사무엘상 28: 1-25
25장에서 죽은 사무엘이 오늘 또 죽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제가 사무엘이 하도 궁금했는데 성경이 친절해서 참 감사합니다.
어제 치료한 학생 중에 한 명은
탈북하는 과정에서 팔리고,
17살에 애기 낳고 또 팔리고, 세번이나 팔리고
같은 북한 사람과 조선족에게 배신당해서 북송당했다가
겨우 남쪽까지 온 25살 여학생입니다.
맞고 팔리고, 아퍼서 상처가 많다고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데
이쪽 남쪽의 대부분 여학생들보다 덜 아픕니다.
뭐가 아프다고 말할 수 있어서,
울 수 있어서 다행이고 기본 도덕감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통일이후에 북쪽의 백성들의 맨탈에 대해선
그다지 염려 안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진로가 걱정되어서 치료받는다는 학생들의 비슷한 질문이
'샘 저 뭐 전공하면 괜찮을 것 같아요?'라는 질문입니다.
거의 쪽집게 도사한테 묻는 것같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니가 할수 있을 것 같은 과를 대학마다 들어가서 메모하고,
그 후에 하나씩 지워나가고 남은 것으로 고민해보자' 라고 대답하지만,
우리 새터민 학생들은 미신적인 것이 꽉 잡혀있습니다.
북한 지하에 많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동네마다 숨어있는 점치는 집이, 무당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는데,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여 그들에게 갖다 바친다는 것을
알고 놀라서 학생들에게 물으니 맞답니다.
심지어 탈북하는 과정에 대해 묻고는 날짜까지 점지받는데
그것이 밀고되어 다시 잡힌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점을 보거나 기도원에서 기도받는 것 등은
한번도 하지 않아서 참 좋고, 제사도 지내보지 않아서 참 감사합니다.
업어주지 않은 친할머니가 제 머리에 손을 얹고는
안수비슷한 것을 하시면서
'이 불쌍한 것을 주님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라는 기도가 다입니다.
그렇지만 뿌리깊은 기복신앙은 점 보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사무엘이 죽었는데 아직도 사무엘하가 남았습니다.
다윗 상하가 아니라 사무엘 상하라는 것을 묵상합니다.
오늘도 '하나님 고양이를 치워주세요. 전 이것만은 싫어요'
라고 기도도 못하는 저는
하나님을 불러도 대답을 듣지 못해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는 사울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오늘은 쉬는 날인데
고양이 피해 찜질방으로 숨지 않고
집에서 밀린 일을 하며 공부도 하겠습니다.
요즘 치료하는 새터민 학생 10명과
개인치료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또한 내담자들에게 치료할때마다
신접한 여인처럼 말하고 싶어하는 저를 봅니다.
살겠다고 제게 치료를 신청하는 새터민 학생들에게
저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믿게 하는 치료가 되기 위해서
매 회기마다 적용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