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세에 교회를 처음 나간후 이제까지 나름대로 신앙생활하려 했지만
돌아보면 저의 신앙성숙에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바로 '합리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로고스 논리적이니 하나님의 나라도 논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전체를 알지 못하는 제가 만나는 논리와 합리성은
짜맞추기와 내가 원하는 것만 보이는 나만의 안경과 여전히 나를 중심으로 놓는 육적인 논리뿐이었습니다.
회개는 어떤 한 행위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나의 전 존재의 상태, 그 자체에 관한 것이며
나의 어떤 행위는 바로 나의 육적인 상태를 그저 드러내줄 뿐이었는데
육적인 상태에 머무른 나는 저의 세계 안에서 너무나 논리적이었으므로 무엇을 회개할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나의 합리성이 바로 나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사단의 속임수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부터
저의 합리성을 '끄는' 것이 저에겐 너무나 어려운 순종이었습니다.
말씀대로,하나님이 인도하시는대로,그저 해야하는 것이 분명하면 그대로 행하면서 뒤죽박죽을 경험하고
그 사이에서 정말 우연처럼 실타래가 풀려가는 듯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합리성을 '끄는 연습'을 조금씩 하게 되었습니다.
불가능한 시간속에 예목을 결국 마쳤습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거의 할 수 없는 미션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과의 싸움에서 결국 예목 훈련을 지나가면서
만일 예목도 없었더라면 저의 삶이 중심을 잃고 얼마나 정신없이 돌아갔겠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아바타처럼 세종시와 서울을 아이를 데리고 4.5일 2.5일 나누어 정신없이살면서 예목이 없었다면
어쩌면 큐티도 흐트려졌을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모든 정신없는 시간가운데 예목훈련이 있었기에 애쓰면서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 저의 합리성을 끄자 하나님의 합리성이 드러났습니다.
오늘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합리적인 다윗을 봅니다.
다윗은 그리로 피해야 할 이유를 500%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상황이 이런데 어쩌라고요.. 그게 저의 주제가였습니다.
남편에 대해서도 합리성을 꺼야만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것은 내가 참아준다가 아니라 내가 모른다로 바뀌었습니다.
남편도 나에 대해 무수히 합리성을 끄고 살고 있겠구나,,, 자기도 답답한데 참고 있겠구나
그저 그의 심정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시시비비를 따지기 시작하면 결론은 없고 심장박동만 올라가고 다투는 부모앞에 아이만 불안해졌습니다.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나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는 저의 삶의 방향을 돌이키기 위해 하나님은
무던히 부지런히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만 숨이 쉬어지고 공기가 나의 속을 시원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점점 분명하게 인정하게 만들어가셨습니다.
또다시 시글락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
다윗은 1년 4개월만 살았지만 저는 또 14년을 살 수도 있기에,
아니 이미 어느 부분은 아직도 거기에 살고 있기에
내 안의 죄와 게으름과 끊임없이 싸워야 함을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날마다 이어지는 영적인 전투,,,
저도 언젠가 승전가를 부르며 이웃도 지켜낼 수 있는 견고한 말씀의 성을 날마다 지어가기를 오늘도 꿈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