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5일 금요일
창세기 48:1-22
“야곱의 축복”
야곱은 파란만장했던 나그네 인생을 마무리해야할 시간이 되었다. 그는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담담하게 자신을 인도해 오신 하나님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요셉에게 부탁한 일은 자신의 장례식이었다. 자신의 본향 가나안에 장사 지낼 것을 맹세하게 하였다. 자신이 가야할 목적지가 분명한 야곱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서 병들자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최후에 한일은 자손들을 축복하는 일이었다. 임종을 앞두고 축복하는 야곱은 죽음조차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48장 2절에서 두 가지 이름이 동시에 등장한다.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말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야곱으로 시작한 인생을 이스라엘로 마치게 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고스란히 이 한절에 담겨 있다. 인생들의 눈에는 야곱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스라엘로 보고 계신다. 우리 역시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동일한 인생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들로 인치셨다.
그는 요셉을 축복하기에 앞서 자신을 처음 만나주셨던 루스 땅을 기억해냈다. 에서를 피해 유숙하였던 곳이었다. 돌베개를 베고 잠을 청했던 곳이다. 도망자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는 그 돌베개가 성전 기둥이 될 것이라고 서원했던 벧엘이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서 복을 주셨던 그 언약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있다. 그는 잊지 않았다. 추억의 장소였다. 첫사랑이었다.
그가 걸어온 147년을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험악한 세월 속에서 그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잊지 않았다. 삶의 길목마다 이정표가 되어 주셨던 하나님으로 인해 그가 이스라엘로 거듭나게 된다. 야곱의 일생은 바로 내가 걸어가고 있는 삶의 푯대가 된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기 위해서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이라는 도가니를 통과해야만 했다.
20년 동안 라반의 집에서 당했던 거짓과 탐욕에 희생자였지만 견딜 수 있었다. 그는 마음속에 새겨진 사진첩을 보며 어려울 때마다 벧엘의 하나님을 기억하곤 했다. 라반에게서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신풍나무 껍질을 베껴내고 그 앞으로 양을 지나가게 하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방법을 동원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고 계셨다. 그가 에서를 만나기 전에 두려움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의 군대를 보여주셨던 곳을 그는 마하나임이라고 하였다. 모든 소유를 보내고 얍복강에 홀로 남아있을 때, 자신과 씨름하면서 그의 환도뼈를 치신 브니엘의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그는 오늘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고 있다.
팔을 엇바꾸어 차자인 에브라임에게 오른 손을 얹었다. 이 장면에서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혈통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는다고 말씀하신 요한복음 1장 13절 말씀이 생각이 났다.
야곱의 축복의 전제는 할아버지의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의 이삭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출생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이라는 말 속에는 우리를 돌보시는 어머니 하나님의 모습이 보인다.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라는 표현에서는 우리를 지키시는 마하나임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본다. 야곱 자신의 일생에 녹아있는 하나님을 돌아보면서 축복하고 있는 것이다.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았다. 영원한 하나님을 노래하였다. 죽음 앞에서 훌훌 털어버리듯 떠날 수 있는 야곱은 나그네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죽음조차도 아름다운 야곱이다. 야곱처럼 살고 싶다. 임종의 순간 자녀들을 향해서 마음껏 축복하는 야곱의 인생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