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6:13-25
사무엘상이라고 쓰면서 오늘도
'사무엘은 어디서 이 모든 일을 보고 있을까?'
'영화 제목 속에 주인공은 왜 이렇게 잠잠할까?'
생각하며 내 인생에서 '윤덕애'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지만
주인공은 하나님이시구나 하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양이때문에 덜덜 떨기도 하고,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고 직장에서의 일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꽉 차 있는 제가 객관적으로 보아집니다.
이렇게 조금씩 달라지는데, 확 달라지지 않는다고
보츠와나에 갔다오지 않아서 자존감이 없다고
저 자신을, 하나님이 주인공이신 저 자신을 하대하기도 합니다.
25절 큰 일을 행하겠고
목사님의 남편이신 사부님께서 돌아가실 때,
큰 일은 작은 일부터 하는거라고 하셨다는데
오늘 제가 해야 할 작은 일은
고양이를 치운다고 해놓고 왜 안치우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작은 방에서 꿈쩍도 못하고 있어서,
문도 못열어서 동물학대를 하고 있는 마음이 들어
죄책감에 힘들어할 것이 아니라, 고양이와 제가 둘다 견디는 것입니다.
딸이 너무 아파하고 또 퇴직을 해야하는 것에
'하나님 그렇게 오래 직장 다니게 해주세요' 하고 빌었건만
왜 안들어주시냐고 원망섞인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나 죽으나 당신의 것이라'는 찬양을 계속 부르겠습니다.
다윗이 아브넬을 부르는데
'왕을 부르는 너는 누구냐'라고 말한 것처럼
저는 조금만 뭔가 되는 것 같으면 바로 왕이 됩니다.
유치원 원장할때,
수입이 조금 좋으면 바로 왕도 아닌 것이
왕처럼 굴었습니다.
돈이 조금만 있어도 왕이었고, 사치가 그냥 일상생활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습관이 붙어있어서 균형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남정네들처럼 음주가무를 즐겼고,
자식때문에 살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딸이 왜 아프냐고 아들이 왜 고양이로 날 괴롭히냐고
묻고 있는. 악성자기애적 환자입니다.
그래도 '팍 이렇게 적용해야지' 하고 서두르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인공이신 내 삶에 작은 것부터 소소히 적용하겠습니다.
고양이가 무서울때마다 '사나죽으나'찬양을 부름으로 견디겠습니다.
보츠와나에서 예쁘다는 말을 들으신 선교사님처럼
목장과 학교에서 예쁘다는 말을 듣게 하신 하나님때문에
'내이름 아시죠'찬양을 부르겠습니다.
전엔 '정말 내 이름 아실까' 였다면
지금은 '물론 아시죠'라고 답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물론 아시는데 참 죄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