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화장인가?
작성자명 [순정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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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2.18
간 밤에 내린 얼음 비
주일에도 일하는 불쌍한 우리이기에
남편 먼저 보내고 나도 먹거리를 준비해 놓곤 가게를 나가려하는데
전화가 울립니다
길이 너무 미끄러우니 나오지 말라고........
모처럼 얻게 된 시간 해 본지 오랜된 화장을기초부터 단단이 시도 합니다
화장을 하며 나는 누구를 위하여 이리 곱게 단장을 하는가?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속 눈썹 하나 하나에 마스카라를 바르며 느끼는 설레임은
살아 있다는 연한 잎새와 같은 싱그러움입니다
태어나 난생 처음
내 스스로 주님만을 위하여
곱게 단장한 후 묵상하려
주님 앞에 앉아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일찍 주의 뜻을 깨달아
일찍 그분만을 위하여 단장하며 살았어야 할
그분만의 소유였음에도 세상의 안목과 이생의 자랑과 정욕을 위하여 화장한 적이
더 많았음을 고백하며 나를 언제나 정결한 처녀 대하듯 사랑해주시는 주님께
내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아름다움엔 무엇이 있을까 긍구해보며 오늘의 말씀을
펼쳐봅니다
겨자씨와 누룩 비유(마 13:31-33; 막 4:30-32)
18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나를 가르치시기 위해 노심초사 내 생활 환경 깊숙히 들어 오시여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
하늘나라를 설명해 주시는 나의 주님께 나는 얼마나 주님을 알기 위해 주님 당대 주님께서 사셨던 주님의 시대적인 환경에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있었을까?
사람이 자기 채소 밭에 겨자 씨 한 알을 뿌리기 위해 가졌던 수많은 몸 동작을 생각해보며
울 주님
자기 소유인 내 마음의 밭에 겨자씨 한 알 같은 생명의 말씀을 뿌리기 위해 그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친히 사람 몸을 입고 내려오신 걸 묵상하노라면 가슴이 문드러지듯 아파옵니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 밭에 겨자씨 한 알 같은 생명의 말씀을 뿌리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하늘 아빠에게 맡긴 채 그 사람 곁으로 가야 하는 몸 동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울 주님 수가 성의 한 여인에게 말씀을 심어 주시기 위해 걷고 걸으셨던 그 수고로움에 이제사
실 눈 뜨는 내 가슴에 담을 것 이라곤
울 주님 외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온 맘 다해 선포합니다
또한 하늘 나라를 비유하심에
여인의 손으로 집어 놓은 소량의 누룩이 가루 서 말을 다 부풀리게 했다는 말씀은 너무나 신선한
충격입니다
음식을 만들어 온 식구들을 배불리 먹게 하는 가사 노동자인 나로하여금
끊임 없이 일상 안밖으로 소리없이 번지는 하늘 나라의 확장에 관심을 두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종내는 모든 관심이 하늘 나라 밖에 없는 나로 만들어 버리는 그분은 정녕 하늘 나라의 선구자임과 동시에 하늘 나라의 주인인 것입니다
그래 나는 그 분의 손에 들려진 누룩이고 싶습니다
순전한 누룩이고 싶습니다
그 분의 피와 살로 정결해진 누룩이고 싶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마 7:13-14, 21-23)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2)참여하리니 헬, 기대어 누워 있는지라(유대인이 음식 먹을 때에 가지는 자세)
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주님 당대 시절
예루살렘 성엔 좁은 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녁이면 아침부터 활짝 열려 있었던 예루살렘 성문이 굳게 닫혀지기 때문에
여행을 떠났다 늦게 돌아 온 백성들은 성 밖에서 밤을 지새게 되여 있습니다
그 넓은 예루살렘 성문을 밤에도 열어 놓으면
어둠을 틈타 대적들이 군사들을 이끌고 예루살렘 성문을 통과하여 예루살렘 성내를 공격하는 것
을 예방하기 위해서 적군들이 아님에도 문지기들은 문을 열어 주질 않았답니다
허나 그 밤에 예루살렘 성내로 들어가지 아니하면 안되는 피치못할 백성을 위해서 문 하나가 있었는데 그 문이 바로 좁은 문이라지요
그렇게 피치못할 사정으로 인하여 예루살렘 성내로 들어가야하는 사람에게는 그 좁은 문이야말로 기쁜 문이요 절박한 문이요 일생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는 절대절명의 문이요 나아가 생명의 문이 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 좁은 문을 통과하여 성내로 들어가기 위해 그가 지나 가야 할 길은 말할 수 없이 협착하고 조금만 발 길을 잘못 헛 디디면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수 있는 불편한 길이였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 길을 즐거움으로 찬송하며 걸어갑니다
그 길이 없었다면 그는 그의 피치못할 사정을 풀어 놓을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내가 가는 길도 이러합니다
사노라 허겁지겁 언제나 때를 놓치는 내게
그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들어간 성문은 이미 꽉꽉 닫혀 있었습니다
내 사연을 꼼꼼히 들어주며 내가 사모하는 본향인 예루살렘 성내로 들어가는 문으로 인도해주시는 이는 울 주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내게 그 좁은 문이 되어 주시려 친히 주님께서 십자가로 만들어 주신 그분을 묵상하노라면
이 길이 아무리 험하고 열악한 환경으로 뒤덥힌 길 일지라도 찬송하며 갈 수 밖에 없는
유일한 그 구원의 문입니다
그러나 이리 좁고 협곡함에도 들어 가겠노라고 소리치며 문을 열어달라 구하는데
들어가지 못하는 이가 많다 하십니다
주님께서 구하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음에도
오늘 주신 말씀엔 구하여도 들어 가지 못한다 합니다
그것은 때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함에도 때가 있어야 합니다
마치 에서가 깨달아 아무리 축복을 구하였어도 때를 놓쳤다는 그 이유하나만으로
장자의 축복을 놓친 것 같이.......
좁은 문마저 닫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문이 닫친 후 아무리 소리쳐야 소용없습니다
어젠 제가 가게에서 일을 하다가 온종일 제 가게 문밖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에게 여기서
떠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이 땅이 캐나다 땅인데 어찌 나보고 떠나라하느냐고 내게 대듭니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다시한번 명했습니다
이곳에서 떠나라! 고......
결국 그들은 떠났습니다
나는 이 전쟁을 죽는 날까지 치러야 할 지도 모릅니다
차츰으로 이러한 사연들을 묵상하며 털어 놓을 때가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모든 인내와 참음엔 한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인간의 한계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신이시며 인간이신 주님께도 그러합니다
수많은 기회를 주었음에도 돌아 오지 않을 때
그 결론은 어둠 속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 만 할 일 뿐인
인생이 된다는 것 역시 진리입니다
내게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 수만번 가르쳐주어도 늘 부족한 진리이지요
선지자들을 죽이는 예루살렘아(마 23:37-39)
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32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3)완전하여지리라 하라 또는 완전히 이루리라
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누가 무엇이라 말을 해도
심지가 견고한 울 주님 살아계심에 그분은 나의 의지이시라 고백하게 됩니다
오늘과 내일만으로 완성을 보지 못하시는 주님
주님께서도 귀신을 #51922;아 내며 병을 고치는 것만으로 자기 인생이 완성되지 아니하셨다면
우리들이야!
내가 주님 이름으로 병도 고치고
귀신들을 내어 #51922;으셨는데 어찌 저를 모른다 하시나이까?
그 날에 이리 대소동을 피울찌도 모르는 제 스스로에게
나는 진정 묻고 싶습니다
오늘과 내일 외
그 제 삼일이 있냐고?
주님께는 삼 일이란 제 삼의 시간이 계셔야만 하셨습니다
사실 제 삼 일은 내일이라는 말에 포함이 되는 미래 시제입니다
허나 울 주님 제 삼일을 단순히 미래로 뜻하여지는 내일이란 언어로 말씀하시지 않고
굳이 제 삼일이라는 그분만의 시각으로 말씀해 주셨음에는 그분이 얼마나
그 제 삼일에 자신의 전 인생을 맞추시고 사신 분이셨던가 보여주는 증거이겠지요
그 제 삼일이 오늘 내내 내게는 맴맴 도는 하루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라긴 이미 그 제 삼일을 사신 울 주님께서 살아 계시니
나도 주님 주시는 은혜로 강하여져 그 삼일에 전 인생의 촛점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전에
내게는 충만한
오늘은 있었던가?
그 충만한 오늘이 있어
기약된 내일은 과연 있기나 한가?
이리도
부족한 날 데리고
여전히
사랑한다 말씀해주시는
울 주님
날 사랑한다는 그 사랑을 멈출 수 없다고 고백하시는 그 주님 있어
오늘 하루 또 살아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