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비가일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남편의 어리석은 행동을 전해들었을 때에는 그럴줄 알았다. 자업자득이다. 난 모른다 했을 것 같습니다.
일을 수습하고 돌아와서 만취한 남편을 보았을 때에는 지금 제정신이냐고 흥을 깼을 것 같습니다.
다윗의 전령들이 아내로 모시러 왔을 때에는 어차피 서열상 윗사람이 될 것이므로 그냥 알았다 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급히 따라가지 못하고 부자 남편이 남기고간 재산과 자유를 포기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다가 급히 떠나버리는 아비가일을 보며
나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남편과 사별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딴 남자한테 가는지 조금 이상했는데
다시보니 그것은 본질을 보지 않고 이야기만 본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부자의 안주인이 다윗의 부하들에게 내가 당신들의 발 씻길 종에 불과하다는 말을 했을까
생각해보니 그것은 다윗 공동체에 대한 존경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발의 아내로 살면서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애통과 힘겨움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공동체에 대한 인정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아비가일은 자신의 육신의 소속에 상관이 없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았던 사람이었나봅니다.
기존의 가진 것들을 모두 버리고 급히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떠날 수 있었던 아비가일에겐
따르는 처녀 다섯이 있었습니다. 운명을 같이하고자 한 사람들 다섯이 지체하지 않고 따라왔습니다.
이미 아비가일은 자기가 있는 곳에서 작은 공동체를 갖고 있었습니다.
오랫만에 이전 교회의 지체와 통화를 했습니다.
말이 통하고 있어서 마음이 든든한 친구입니다.
직장동료는 직장이 바뀌면 멀어지게 되지만
말이 통하는 지체는 교회가 바뀌고 사는 곳이 바뀌어도 멀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비가일을 보며 하나님만 바라며 사는 사람이 어떠한 모습인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사람으로, 말이 통하는 어디나 같이 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를 꿈꾸어봅니다.
그것이 남편과 아이가 되기를, 말이 통하는 공동체인 가정이 되길 꿈꾸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