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 4월22일 사무엘 상25:36~44]
요즘 나름대로 성품대로큐티 글을 올리다가 아내에게서 걱정 반 염려 반의 객관적인 충고를 들었습니다.
글 내용에 코걸이 귀걸이를잔뜩 달고 장황하게 사자성어를 섞어 글을 길게 쓰며 잘난척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면서 간결하고 담백하게 해 줄 것을 주문하였습니다.
나는 내 성품대로 하는것이 바로 주님이 성품대로 쓰시는 것과 부합된다며 약하게(?) 항변 겸 합리화를 해 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가능한짧게 쓰려고 하지만 내 힘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하심만으로 가능할 것입니다.
오늘 큐티에서 나발(Nabal)은 ‘때려라 먹어라 부어라 마셔라 취하자’ 하며 산해진미 음주가무의 뻑적찌근하고 시끌벅쩍한 왕 같은 요란한 잔치를 배설하고 건들건들 만취하여 코 골며자고 일어나 보니 잔치하는 밤사이에 다윗에게 다녀와 조목조목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는 지혜로운 아내 아비가일(Abigail)의 브리핑을 듣고 전날 마셨던 술이 확 깨고 아연실색 기겁하며 당장 들이닥쳐 자신의 명줄을 끊어 버릴 것 같은 다윗의 존재에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하니도둑이 제 발 저리듯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습니다.
나발이 늦게라도 자기 잘못을 깨닫고 지은 죄를 회개하며 수습할 길을 모색해야 하는데 들어 둔 말씀이 없고 큐티 대신 부귀영화만 탐하니 ‘욕심있는 자여 화 있을 진저’가 되는 것 아닐까요?
나발은 두려움으로 낙담하고 심장이 멎고 소화도 안 되어 급기야 복수가 차고 또 숨도 쉬어지지 않으니 가뜩이나 주색잡기에 굳어진 몸이 한꺼번에 온갖 합병증 증세로 나타나 급살하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께 순종치 않음으로 내려지는 여호와 하나님의 천벌이고 스스로 자초한 죽음이기도 한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윗이 사울에게서 도망다니며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급상태에서 믿음의 지체인 요나단에게 고백하는 대목을 생각하며 자나깨나 오직 주님 손에 의지하여 생명싸개(the bundle of the living) 속에서 보호받는 우리 목숨임을 날마다 알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네 생명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와 죽음 사이는 한 걸음뿐이니라”(삼상 20:3)(Yetas surely as the LORD lives and as you live, there is only a step between me and death)
나발의 죽음을 듣고 다윗은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발의 악행과 모욕에 치를 떨며 살인 죄를 범할 뻔 하였던 자신의 죄를 미연에 방지하여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비가일은 미련하고 속물이었던죽은 남편 나발의 무덤에 풀도 마르기 전에 다윗의 청혼은 즉시 수락하는 속내를 알 길이 없지만 다윗 역시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 없이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에 빠져듦이 보입니다.
사울은 유부남인 다윗이 결혼한 딸 미갈(Michal)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도 일언반구도 없이 자기 맘대로 두 명의 아내(아비가일/Abigail of Carmel 및 아히노암/Ahinoam of Jezreel)를 취한 소식을듣자 경쟁적으로 미갈을 자신의 고향인 베냐민 땅 갈림(Gallim에 사는 라이스(Laish)의 아들 발디(Paltiel)에게 재혼시켜 버립니다.
다윗도 미색을 겸비한 아비가일과 고향 유다 지파 출신 아히노암(정략결혼?)뿐만아니라 그 후 8명의 공식 아내와 처첩을 두었음을 들으면서 다윗의 경우도 15광야 고난 가지고는 부족하였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사람은 믿음이 대상이 아니고 ‘되었다함’도 없으며 별 인간, 별 인생이 없으므로 우리가 의지하고 감사 찬양 드리며 날마다 여전한 방식으로 생활예배에 묶이고 공동체에 묶이며 예배에 결박 당하고 큐티로 주신 말씀에 새로워짐을 알기를 원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오직 주님만을 상급으로알고 믿고 누리며 살아가는 인생이 최고의 삶임을 알고 적용하기를 결단하고 싶은 축복과 은혜가 충만한 화요일 아침입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예레미아애가 3: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