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4:1-22)
찬찬히 돌아보면, 분명 사울같은 사람이 제 주변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간단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그는 나를 ‘학대’하되, 나는 그를 ‘선대’하라(17)고 합니다. 이유는 ‘나와 그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그에게 보복하시기(12)’ 때문입니다.
상황이 절대 나에게 유리하고, 옆의 모든 사람이 나를 응원하여, 하나님의 기도응답이라 확신이 들더라도... ‘내가 손을 들어(6)’ 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 것은 하나님의 몫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들에 온 이후로 그렇게 하려고 노력을 지금도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어제도 누군가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무리 선대를 해도, 그런 사람은 나중에 뒤에서 칼을 꽂을걸’ ... 그냥 웃었습니다. ‘할 수 없지, 뭐...’
‘그럴 수 있습니다.’ (성금요일 예배 말씀처럼...)
하지만, ‘여호와께서 직접 보복하심(12)’을 믿습니다.
그런데, 나는 누구를 ‘학대’합니까?
얼른 떠오르지 않습니다. 나는 없는 것 같은데... 라고 생각을 해보지만...
역시나 떠오르는 얼굴은 ‘나를 학대한다고 여기는 그 사울같은 사람’입니다.
나는 ‘선대’라 여기지만.. 그에게는 ‘학대’일 수 있습니다.
간섭으로 여길 것 같아 거리를 두고, 불공평의 말을 할까봐 말을 아끼는 것이 ‘무관심의 학대’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대’와 ‘선대’ 조차도 내가 판단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일인 것 같습니다.
그저 우리에게는 ‘역할’이 있을 뿐입니다.
내가 항상 다윗이고 싶지만, 다윗이 아닌 것처럼...
내가 항상 사울이 아니고 싶지만, 사울일 수 있음을 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적용> 다음 주부터 힘든 관계의 사람들에게 더 먼저 말을 걸고, 더 관심의 모습으로 다가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