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양평 집에서 나오는데 이 지역은 팔당댐 상수도 보호지역이면서산으로 둘러 쌓여있다 보니 안개 끼는 날이 유난이 많은 편인데 오늘 아침에는 가시거리가 코앞도 잘 안 보일 정도입니다.
어제 제주도로 수학여행 떠난 선박 전복 대형참사소식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인간만사가 마치 한치 앞도 모르는 짙은 안개처럼 예측불허의 막막함같기도 하지만 조금 지나면 아무리 짙던 안개도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마는 이치를 통해 인내와 기다림을 가르쳐 주시며 헛된 것과 찰나적이고 일시적으로 머물다 흔적도 없어지는 허상에 요동치지 말고 장차 다가올 환난의 메시지인 복음으로 예비하라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듣기를 원합니다.
어제 수요예배 말씀에서 고난주간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예수님이라고 하십니다.
마음에 평안이란 ‘뜻과 정신과 중심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하시네요.
오늘 큐티에서 고단한 도피생활이지만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가는다윗과 아둘람 공동체를 묵상합니다.
호시탐탐 유다 땅을 노리고 침략과 약탈을 일삼는 블레셋(Philistines) 같은 무리가 판치는 약육강식의 세상사이다 보니 나약한 그일라(Keilah) 주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도무지 지조가 없어 보여 인간적으로 보면 쳐죽여도 시원치 않을 배은망덕함의 사례를 보여줍니다.
#65279;그일라 지역은 블레셋 접경에 위치한 변방지역이다 보니 블레셋의 침공에 노이로제가 걸려 항시 생존에 위협받고 두 다리 쭉 뻗고 잠자기도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 보니 어제의 은인이라도 내일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배신을 할 수밖에 없고 의리와 도리는 내팽개치고 살아가는 불쌍한 잠재적 피난민 신세이다 보니 다윗의 은혜를 헌신짝 버리듯 뒤로하고 배반의 장미를 보여줄 수 밖에 없는 속 사정에 분명 괴로워하고 있는 모습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환경에는 장사가 없는 것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그래서 인간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긍휼히 불쌍히 여김 받는 주님 사랑의 대상인가 봅니다.
사울에게 쫓겨 동가숙 서가식(東家宿西家食)하는뜨내기 무리로 보일 수 밖에 없는 400명에서 어느덧 600명으로불어난 다윗 공동체가 그일라로 들어 왔으니 그들에게 읍소하여 일단 블레셋을 물리쳐 한숨 돌렸지만 불원간 사울 왕의 군대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반드시 대군을 몰고 내려와 자기네 마을인 그일라를 초토화 시킬 것이 예상되고 다윗과 사울 두 고래 싸움에 새우등 신세 될 것이 명약관화해 보이는상황에서 그일라 지도자들 역시 목숨을 부지하고 마을을 지키려는 생존전략을 구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일라 사람들은 더 힘세고 잔악 무도한 사울의 후환을 두려워한 나머지 사전에 자수하여 광명 찾을 심산으로 닥쳐올 마을의 큰 난리에 대비하려는 전략을 구상하는 것을 그려 보면서 나만, 내 식구만, 내 마을만 살아 보겠다는 얄팍한 속셈이 엿보이지만 과연 그러한 상황에서 나라면 어찌하였을까 생각해 보니 그일라사람들을 처단하지 않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미 만세 전부터 그러한 그들의 처지와 마음상태를 긍휼히 여기시어 심판하지 않으셨을 것으로 사료되기도합니다.
이렇게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자기중심적이고 이해타산적임을 보여 주십니다.
주님께 ‘묻자와 가로되’도 없고 여전한 방식의 생활예배도 준행하지 않고 말씀 공동체에 붙어라도 있지 않으면 우리는 어제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기도 하고 자기 욕심 충족과 자기 보호라는 명목으로 배신과 변신을 밥 먹듯 하게 됨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그일라 사람들의 심정을 통해 다시한번 인간의 악한 본성을 보여주십니다.
다윗은 고난의 행군을 통해 주님이 주시는 경건과 인내를 배워왔고 요나단의 헌신적 참 사랑의 영적 자양분으로 참아 내고 주님이 예정하신 15 광야 중 다음 단계 지역인 헤브론 남쪽에 위치한 십 광야(in the hills of the Desert of Ziph)로 이동합니다.
주님의 만져주심이 없었더라면 주님께 묻기에 앞서 혈기 방장함으로 당장 발끈하여 골리앗의 피가 서린 칼을 휘두르며 배신한 그일라를 응징하였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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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세상 권세와 재물은 사울과 흡사하고 위기에서 도와주었는데도 배은망덕한 면은 그일라 사람을 방불케 하는 나처럼 교만이 왕 노릇하며 영적 어둠 속에서 나를 핍박하였던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사회적으로 모함 받아 떼 밀려나고 모든 사회적 활동도 지극히 제한 받아 거친 광야와 영육간 토굴생활을 경험하였는데 결국 그 사람의 나에 대한 악함을 통해 나를 위해 수고하게 하신 주님의 첫 광야 훈련임이 말씀을 통해 깨달아집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을 원망하며 살의까지 느낄 정도로 미워하였는데 그 사건이 구원의 사건이었고 그 덕분에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주님께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그 사건으로 주님 말씀을 사모하는 축복의 공동체에 속하게 하여주었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 듣는 구조 속에서 감사할 것 밖에 없고 헛된 것에 대한 집착증을 떼어 버릴 수 있도록 해 준 ‘나의 사울님’이 수고하게끔 세팅 해주신 주님께 또 다시 한량 없이 감사하고 찬양하고픈 마음이 샘솟는 주님이 열어주신 목요일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