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23:1
사울을 피해 도망하는 놉 땅에서 도엑의 밀고로 제사장 여든
다섯 명이 학살당했지만 다윗은 내 탓이로다 고백을 했습니다.
내 탓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신앙의 최고봉인 것까지는 알겠는데
내게 적용하는 일이 어려운 걸보면 내 성화는 아직도 멀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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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아둘람 공동체에서 힘든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경험하고 사명도 찾았습니다. 쫓기는 입장이지만
주님을 알게 되어, 신비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다윗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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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꿈치도 따라갈 수 없으니 부럽기도 하고 많이 괴롭습니다.
블레셋에게 져본 적이 없는 다윗이지만 자신의 판단을 의지 하지
않고 하나님께 묻고 또 물어보고 다시 물어보니 그일라를 구원
하라고 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돌보시는 사람이기에 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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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편 없이 다 돌보며 가야 합니다. 힘들어도 힘든 사람을 구원
하면 나도 기쁨이 있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살길입니다.
내 문제에 시선이 고정되면 한 발짝도 못나가는 것 같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지난주에 윗동서가 간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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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날을 새며 고민하다가 끝내 가지는
않았습니다. 소식을 전해준 딸내미에게 미안합니다. 어쩌면 제가
아내와 대면 할 수 있는 기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때늦은 후회를 했습니다. 울보 목사님 말대로 저는 각시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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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 빌지도 못하면서 큐 티 타령을 하는 몹쓸 인간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백성, 이스라엘의 백성을 도와주는데 반해, 사울은
하나님이 그를 나의 손에 넘기셨다고 하며 아전인수 식 해석을
합니다. 그일라를 구원하는 것도 어렵고 그일라가 배반할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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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험입니다. 이 실전을 치루는 와중에 에봇이 온 것은 힘든
시험이 온다는 뜻이고 하나님께서 말씀 하실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내 놓고 도와준 그일라가 자신을 넘겨줄지를 에봇과
하나님께 묻자가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나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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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고로, 내 탓이로소이다 합니다. 내 탓이로소이다는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 나를
배반한 사람 앞에서 평강을 누리는 신비한 능력이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다윗을 배반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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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왕이 사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적용의 골자는 실제적이고 현재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하지요.
다윗이 왕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다윗은 편한 곳에 익숙해지지 아니하고 산골과 황무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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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지만 편한데 길들여진 사울은 다윗을 쫓아다니고 매일
찾아도 하나님이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 하였습니다.
너무 너무 사랑하는 하나님이 생명을 무릎 쓰고 찾아온 요나단을
보여주시고 블레셋에 찾아오셔서 사울을 막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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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투성이라도 함께 동행 하시고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믿습니다. 다윗과 같은 고향의 유다 지파 십 사람들이 다윗이
있는 곳을 밀고합니다. 사울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도 다윗을
잡지 못하고 늘 쫓다가 그칩니다. 다윗은 예수님의 표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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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다윗의 하나님이고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야곱처럼 다루고 예수님의
아버지도 하나님이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다루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은 다윗을 위한 보호가 아니라 다윗에게 보여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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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속성을 더욱 구체화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이것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Coming Soon!
2014.4.17.thu.헤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