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0:24-42)
요나단이 참 대단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윗을 위한다고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30)’이라는 욕을 먹었는데도, 아버지가 던지려한 단창에 맞아 죽을 뻔(33) 했는데도....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다윗을 위하여 슬퍼함이었더라(34)’.
노하고 슬퍼한 이유가 아버지에게 당한 ‘자신’때문이 아니라, ‘다윗’ 때문이라고 한 사실이 놀랍습니다.
아무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싸움의 중재를 하다가도, 욕을 얻어먹으면 불끈하는 것이 사람인데..... 요나단은 참 다릅니다. 물론 왕위도 양보할 정도이니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사무엘상의 핵심인물이 다윗이 아니라 요나단인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교수사이, 전공의사이, 지인사이, 성도사이, 가족사이.... 직장에서, 교회에서 중재할 일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서는 한쪽에서, 아니면 양쪽 모두로부터 욕을 먹거나, 섭섭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 그런 소리를 들으면 솔직히 속으로 불끈합니다.
그럴 때 쓸데없이 노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화내는 놈(30)이 잘못이 더 많을 수 있다는 간단한 중재의 분별도 배웁니다. 진정으로 사랑으로 나서는 중재가 아니면 나서지 말아야 하는 것도 깨닫습니다. 결코 공명심으로 중재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침부터 과회의에서 교수 한명이 과행사 시간변경에 대해서 스스로의 의로움으로 과민하게 토를 답니다. 또 교수 한명은 실험실 동물 사용규정을 어기고 있어 동물냄새로 다른 실험을 못할 지경인데, 쉽게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전공의 의국내 갈등 문제는 쉽게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가 중재할 일입니다.
살면서, 진정으로 노하고 슬픈 일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 밖에 없음을 배웁니다.
믿는 자로 감당해야 할 것이 참 많습니다. 사사로이 감정을 누르는 훈련이 더더더 필요합니다.
적용> 직장의 일에 피할 것은 피하고, 중재로 인내할 것을 그렇게 적용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