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20:24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첫 날입니다. 신용불양 목장에서
비축해온 에너지를 가지고 똑바로 고난에 동참할 것입니다.
초하루에 사울은 평시처럼 음식을 먹고, 둘째 날에야 다윗이
어디 있냐고 묻습니다. 베들레헴에 갔다고 요나단이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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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은 화를 내며 다윗을 끌어다 죽여야 한다고 합니다.
다윗을 변호하는 요나단에게 단창까지 던집니다.
이쯤 되면 객관적으로 사울의 의도를 알아야 하는데,
악인의 의도는 아무리 감추려 해도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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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사울은 다윗이 보이지 않자 그가 어떤 일로 부정하게 되어
참석하지 못했으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정결 법에 따르면 시체에 접촉했거나 몸을 더럽힌 사람은 당일
제의에 참석하지 못합니다.(레7:20-21) 그런데 둘째 날도 다윗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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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자 사울은 요나단에게 이유를 묻습니다. 요나단은 자신이
다윗에게 호의를 베풀어 베들레험에 보냈다고 둘러댔습니다.
사울은 다윗의 일로 격한 반응을 보이며 요나단을 맹공 합니다.
요나단이 다윗의 무죄를 변호하며 사울의 잘못을 지적하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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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에 사로잡힌 사울은 아들 요나단에게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이라며 생 난리를 쳤습니다. 어쩌면 요나단은 이때 아버지의
결심을 알게 되었다고 봅니다. 사단의 방법은 너무도 치사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한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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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입니다. 떠나거나 옮겨야 될 분명한 이유가 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것도 다윗은 믿으면 안 되며 오직 구원을
위해 길을 찾아가야 하는데, 다윗은 생명이 경각에 달렸으니 날마다
하나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것이지요. 다윗에게 영성의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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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사울인데, 나를 위해 수고하는 것이 고마운 것이며, 창조주의
뜻을 알게 되니 감사한 것입니다. 정처 없이 떠나는 다윗과 요나단의
마지막 장면이 나옵니다. 언약으로 맺어진 말씀에 근거한 사랑은
어디에서도 유효하며, 요나단과 다윗의 사랑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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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이어져 몇 천 년 지나서 예수님과 바울의 사랑으로 보여 진
언약의 사랑입니다. 너무나 짧은 만남이었지만, 영원토록 만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변해야 할 것은 말씀을
듣는 나 밖에 없다고.
2014.4.14.mon.헤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