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20:1
이름이 심히 귀하게 되니라 한 다윗이 도망자가 신세가 되었습니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잠시 황홀경에 빠진
사울이 다윗을 재임용했는데 계속 몸담고 있어야 하는지 심각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요나단은 절대 아버지가 안 죽일 거라고
-
하고 다윗이 베들레헴으로 간 것처럼 전하여 사울이 좋게 받아
들이는지 시험하고자 합니다. 사울이 라마 나욧에서 성령을
체험했으니 혹시 변하지 않았을까 해서 또 믿어보고 싶은 것인데
삶이 달라지지 않으면 가짜입니다. 다윗은 홀로서기를 해야 합니다.
사무엘도 미갈도 안 되고 요나단은 계속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객관적으로 사울이 정말 나를 도울 건지 확인해야 합니다.
다윗이 무서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시시 때대로 하나님의
인도가 중요합니다. 아이러니한 것이 사울은 계속해서 다윗을 죽이려
하나 그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죽이려하는 다윗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복도 많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아가페)과 미갈의 사랑
(에로스)거기다 요나단(필로에)의 사랑까지 퍼펙트 합니다. ㅠ ㅠ
희랍인들은 사랑을 셋으로 나누어 무조건적인 사랑을 아가페라고
하지만 아가페도 인본주의 관점일 뿐입니다. 약한 자가 곤궁에
처했을 때 그러할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적으로 베푸는
사랑과 충성이 히브리 적 "헤세드"라고 배웠습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요나단과 다윗의 사랑을 “소울 메이트“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요나단은 식구를 객관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므비보셋을 살린 것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의 대적을 하나님이 치실 줄 믿는다고 했는데 아버지도
그 대적이 포함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한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을 하나님께 헌신하게 하는 것인데, 요나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을 보여주고 다윗에게 인자를 베풀라는 약속을
맹세하게 하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죽어주는 사랑으로
다윗도 그 길을 갈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고, 사울 가문은 다 죽고 절름발이 므비보셋만 남은 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며 거기서 사도 바울이 나옵니다. 요나단은
영원한 약속에 근거한 자기희생의 사랑을 했습니다. 내 사랑은
언약에 근거한 자기희생을 사랑인가, 이기적 사랑인가?
주님,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사랑타령을 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집착이며 욕정이었고
기브 앤 테이크 이었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을 의식하여 외식하기도 하고 멀찍이 서서
주님과 간격을 두고 살았던 나의 사울을 용서하옵소서.
2014.4.13.sun.헤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