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2일 토요일
창세기 42:26-38
“옛일을 기억하다”
시므온을 볼모로 잡히고 아홉 형제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관에서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었는데 자신들이 지불하였던 돈 뭉치가 고스란히 양식과 함께 있었다. 갑첩 혐의에 이제는 도둑으로까지 몰리게 되었다.
위기의 순간에 이 일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동생을 은 이십에 팔 때 그들은 요셉을 팔아버린 것이 아니었다. 그 현장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렸던 형제들이었다. 양식 값으로 지불한 돈이 그들의 자루에 들어있자 그제서야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이다. 스물 두해가 지나도록 잊고 살았던 요셉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요셉을 잃어버린 후, 자식 문제를 입에 거론하는 것은 야곱 가정에서 금기사항이었다. 그러나 시므온이 볼모로 잡힌 사실을 야곱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므온을 구하기 위해서는 라헬의 남은 유일한 혈육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한다는 말은, 정말 목구멍으로 나오기가 심히 어려웠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란 말을 이런데 쓴다 하겠다. 이제는 오도 가도 못하는 進退兩難(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이런 열두 형제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계신다. 이처럼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이들을 통해 열두지파를 세우시고 이스라엘 건국의 기초를 놓고 계신다. 이것이 은혜이다.
가롯 유다처럼 예수님을 팔아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만을 기대했던 나였다. 주님을 이용하여 성공하고 싶었다. 명예를 얻기 위해 예수님의 이름을 파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나를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하셨다. 예수님의 희생을 이제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세상의 가장 값진 보화를 가슴에 담고도 더 달라고 보채는 어린아이처럼 살았다.
그럼에도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떠올렸다는 것이 희망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바라보았다는 것에 소망이 있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에 걸린 놋뱀을 보면 살 수 있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4-15
오늘 내가 바라보는 예수만이 생명이요 소망임을 깨닫는다. 아! 은혜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