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9:1~7
가끔 부부목장에,
오늘 본문 같은 상황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바람 핀 남편이 사울이 되어 목장에 끌려왔는데,
다윗인 줄 알았던 부인이 또 다른 사울이 되어 남편을 죽일듯이 달려들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마다 목장의 지체들이,
요나단 처럼 변호자의 역할을 해서 겨우 진정 시키지만..
그 다음 주에는,
또 다른 부부에게 똑 같은 상황이 일어납니다.
세명의 용사가 있는 공동체가,
그래서 좋은 것 같습니다.
사울만 있다면 너무 공포스러울 것 같고,
다윗만 있다면 믿음의 성장이 없을 것이고,
요나단 같은 사람만 있다면 자기 죄를 볼 일이 없을테니까요.
공동체가 있기에,
사울이 하나님께 피 흘려 득죄할 것을 막아주고,
무고히 죽을뻔한 다윗의 생명을 보존해 줍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가시적으로 주신 이 땅의 천국 공동체에도,
죽이려는 사람,
죽임당할 사람,
변호해 주는 사람이 골로루 섞여있는데 세상이야 더 말할 것이 없을 겁니다.
제 속에도 사울, 다윗, 요나단이 다 있습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아닌,
제 속의 사울이,
"니가 그럼 그렇지..넌 고것 밖에 안돼..너는 천천이야..너 만만이 되고 싶지?" 하며,
실수하고, 낙담하는 저를 향해 속삭일 때가 저는 제일 힘듭니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금방 분별이 될 것 같은데,
나를 잘 아는 내가,
나를 향해 그런 말을 속삭여대면..그 말이 다 맞는 것 같아서 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런 사울과, 요나단과, 다윗을 용사라고 하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여전히 사울의 모습이 있는데 용사라고 해 주시니,
황송하고 감사해서 정말 용사가 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영적 전쟁의 현장에는,
내가 나를 죽이고,
다른 형제나 지체가 나를 죽이려 할 수 있음을 알고 가겠습니다.
중보자 되시고 변호자 되시는 주님이,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 오신게 바로 기적인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 땅에 사는 자체가,
사울 앞에서 사는 것임도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