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공동체에서 인정은 받는 과정입니다.
사울에게 그리고 백성에게 인정을 받아 지도자가 되어 갑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본문에서 요나단이 보입니다.
사울에게나 백성에게 다윗은 '필요하고 유익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정하고 대접하고 함께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에게 다윗은 어쩌면 경쟁자요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다윗을 단지 합당히 여긴 것이 아니라 '생명같이 사랑하였다' 고 합니다.
왜?
요나단은 왜 다윗을 보자 마음이 하나가 되어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아버지 사울을 보며 외로움과 영적인 고난 가운데 있던 요나단.
그가 다윗을 생명같이 사랑한 것은 하나님을 생명같이 사랑한 것입니다.
외적 고난도 없어보이는데 자기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하나님을 생명같이 사랑한 요나단을 봅니다.
요나단과 다윗이 만나면 세상가치관에서는 요나단은 질투에 다윗은 열등감과 교만에 백번도 더 어긋나야 하는데
'생명같이' 사랑했다고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생명같이 사랑함을 보고 그 둘이 마음이 합한 것입니다.
조직생활을 하다보면 아니 세상 가치관으로 사람들과 지내다보면
복잡한 다층 구조속에 자기도 모르게 들어가게 됩니다.
언행과 속마음이 다릅니다.
말과 표정과 행동은 이익에 따라
속마음은 자기의 가치관과 자존심에 따라..
자동변환이 되는 모습,,, 자기도 못깨닫는 전자동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와 진실(사실)의 세계는 서로 교차하면서 수많은 이야기거리와 뒷담화를 만들어냅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은 전부 자기의 이익과, 자기의 명분과, 자기의 가치관과 자기의 자존심으로 인해 생겨납니다.
'생명같이 사랑하는 것'은 도무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알수도 없는 세계입니다.
저도 날마다 이런 세계에서 살아갑니다.
이런 세계에서도 살아남고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살아남고자 하는
서로 충돌하는 불가능한 목표를 향해 오늘도 공허한 시간에 쉽게 미끄러집니다.
다윗은 사울과 백성에게서 인정도 받고 요나단에게서도 사랑도 받았습니다.
나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으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저도 '생명같이' 사랑하는 것이 있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도무지 마음은 차고 머리만 돌아가는 저의 모습을 깨닫게 하는 것은
오늘의 큐티 본문입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주님 사랑이 없는 제가 사랑할 수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유익을 위해 반응하면서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