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8일 화요일
창세기 41:1-16
“바로 앞에 서다”
오늘 본문은 만 이년 후에로 시작된다. 그가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던 술 맡은 관원장을 통한 청원도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또 이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인간적인 생각이 포기 될 때쯤 바로로부터 부름을 받는다.
인고의 세월이었다. 지난 십 삼년 동안 기다려왔던 날이었다. 절망의 시간이었지만 그는 인내를 배웠고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서 배려라는 단어를 배우고 있었다. 한마디로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바로 앞에 서게 되는 요셉을 통해서 오늘 내게 말씀하신다.
꿈꾸는 자 요셉에게는 지난 시간들이 훈련의 시간이었다. 애굽의 언어에 능통하게 되었고 친위대장의 집에서 가정 총무로 섬기면서 경제를 배웠다. 정치범들의 감옥에서 정치를 배웠다. 이 모든 과정이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제국을 다스리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그가 바로 앞에서 한 고백 속에 지난 십 삼년 동안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15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그는 절망 가운데서도 꿈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만을 신뢰하였다는 말이다. 그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했다는 기록이 없다. 그에게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향한 그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자신의 꿈을 이루어 주실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였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만났고, 감옥에서도 그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꿈의 힘이었다. 쓰러지려 할 때마다 꿈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제국의 왕 앞에서 자신의 믿는 바를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모진 세월 속에 그가 매일처럼 만난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종이었으나 그와 함께 하심을 똑똑히 보았다.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매일의 삶 속에서 인도하심을 몸으로 부딪치며 배웠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내공은 하루아침에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월이라는 톱으로 썰고 고통이라는 망치로 두드려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고 인내가 첨가 되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오늘 나의 인내가 필요한 곳에서 당당히 참을 것이고 시간이 필요하면 기꺼이 기다리면서 하룻길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