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7일 월요일
창세기 40:1-23
“꿈 이야기”
요셉의 나이가 스물여덟이었다. 보디발 아내의 모함에 감옥에 갇힌 지 적어도 10년은 되었을 때였다.
형들에 의해서 팔려온 설움을 삭히며 우여곡절 끝에 보디발의 눈에 들어 총무로 임명 받지만 그것도 잠시, 죄수로 갇히게 된다. 채색옷을 입고 아버지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그가 끝없는 추락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이런 추락을 형통하다는 말로 이야기하고 있다. 꿈 때문에 가족과의 불화가 시작되었고 노예로 팔렸지만 꿈을 기억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에 그는 서있는 곳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노예도 기막힌 일인데 이제는 죄수로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곳까지 내려갔다. 나는 여기서 아무런 죄 없으신 주님께서 죄인으로 몰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사랑을 만난다.
그러나 그가 있는 곳에 주님이 함께 하셨기에 그의 범사가 형통할 수 있었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다. 자신이 섬기고 있는 감옥에 특별한 죄수가 들어온다. 바로의 술과 떡을 맡은 관원장들이었다. 경호대장의 집안에 있는 감옥이었다. 경호대장은 그 두 사람을 요셉으로 하여금 섬기게 하였다.
얼마 뒤에 그 두 사람이 같은 날 동시에 꿈을 꾸게 된다. 예사롭지 않은 꿈이기에 그들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요셉이 다가가 물었다. 어찌 안색이 안좋으십니까? 그들이 꿈 때문이라고 말했고 요셉이 그들의 꿈을 해석하는데 그의 전제가 이러했다. 해몽은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고백은 이국땅에서 11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마음속에 심겨진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갈망이 식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모진 세월 속에서도 그는 꿈을 포기 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는 말이다.
요셉은 꿈꾸는 자였다. 비록 자신이 죄수의 신분이 되었지만 십 일 년 전, 선명하게 다가온 두 번의 꿈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아니 가슴에 간직한 채 버텨오고 있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요셉은 꿈을 해석한다. 그에게 지혜를 주셨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기를 삼일 후에 복직이 될 것이라는 길몽을 예언했다. 그러자 떡 맡은 관원장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삼일 후에 죽을 것이라며 흉몽이었다.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3일은 예수님께서 3일 동안 죽음 속에 계셨던 시간이 아닐까? 의인이셨지만 죄인이 되셔야만 했던 주님의 모습이 두 사람의 관원장으로 나타나셨다. 그리고 나무에 달리는 술 맡은 관원장을 통해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했던 예수님이 보인다.
드디어 삼일이란 시간이 흐르고 요셉의 해석처럼 한 사람은 복직이 되고 또 한 사람은 나무에 달리게 된다.
요셉은 꿈을 해석하면서 실낱같은 희망을 이야기 한다. 술 맡은 관원장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청탁 아닌 청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이 된 후, 요셉의 청원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만다.
아직도 주님은 시간이 필요하셨다. 복권이 되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으셨다. 요셉의 꿈의 종결은 총리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다시 살아나시는 것 이상이셔야만 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셔야만 했다.
그러나 사람은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 인생은 포기할지라도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이것이 은혜이다. 오늘 나는 기다림을 배운다.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꿈을 이루실 그 때를 기다리며 하룻길을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