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7:1-16)
우리들교회 오기전까지 아내와 싸우다 보면 꼭 했던 말이 ‘왜 나를 무시하냐?’ 였습니다. 상대방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런 느낌이 자주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오죽하면, 당시에 아내와 어린 딸이 제 머리에 손을 얹어주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무시받는 느낌을 갖게하는 사단은 물러갈지어다. 물러갈지어다. 물러갈지어다’를 안수해 준 적도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를 우리들에와서 분석해 보고, 해석해보니...
남자만 다섯.. 두세살 터울로,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주먹의 정글’ 속에 힘없는 막내가 저였습니다. 가족 모두가 주말영화를 본다고 방안 가득히 TV앞에 누워있으면서, ‘막내야~ ’하면 심부름을 위해 일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쁘다고(?) 엉덩이를 두들기는 그 우악한 형들의 손들이 아프기만 했습니다.
물론 막내로 사랑도 받았겠지만... 네 형들 모두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공부 잘하는 것은 기본으로 여겨졌지 절대 내세울 것이 못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바로 위의 형은 아픈 몸으로 판사가 되었으니, 부모님의 안타까움과 더불어 우리집의 대표선수 였습니다. 막내인 저의 말은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 괜히 스스로 위축이 되고, 차분히 내 생각을 표현하는 말이 서툴렀습니다. 평범한 대화이고,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의견다툼인데도, 괜히 스스로를 ‘무시받는다’ 라고 생각하고, 말문을 닫았던 것 같습니다.
상대는 나처럼 그저 평범한데, 내가 상대방을 골리앗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싸움을 돋우는 골리앗(4)’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모욕한다(10)’고, 스스로 놀라 두려워했습니다(11).
그 골리앗은 다름아닌 저의 낮은 자존감에 불과했습니다. 저의 교만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들공동체에 와서, 제가 내세울 것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되고, 골리앗처럼 여겨졌던 아내도, 또 다른 상대들도 똑같은 죄인임을 보게되면서 구별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 지를, 예수님의 십자가가 깨달아지면서 자존감이 회복되고, 나도 모르게 그 말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전쟁통 속에서, ‘막내인 다윗은 그저 그의 아버지의 양을 치고 있었다(15)’ 말씀이 저를 깨웁니다. 나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무시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다윗의 삶을 사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적용) 막내로서 형님들의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직장, 교회에서 나의 역할에 순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