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5일 토요일
창세기 39:1-23
“요셉의 형통”
유다가 믿음의 공동체를 떠나서 가나안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 때, 요셉은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갔다. 유다가 가나안 땅에서 그들과 동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요셉은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있었다. 유다는 자기 의지대로 가나안을 선택했지만, 요셉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애굽으로 내려갔다. 유다는 20년 이상을 평탄한 삶을 살았다. 아들 셋을 낳고 가나안 여인과 가정을 꾸리며 일변 행복한 삶을 살았다. 요셉을 팔았던 기억도, 아버지 야곱의 슬픔도 잊혀져가고 있었다.
애굽에 도착한 요셉은 노예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때 그의 나이 십 칠세의 소년이었다.
흔히들 복덩이가 들어왔다는 말처럼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오자마자 그 집에 복을 주셨다. 이방인 보디발의 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과 복 주심을 보았다는 것이다.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는다. 그 이후, 보디발의 집에 특별한 복을 내려주신다.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쳤다고 했다. 씨를 뿌리는 것마다 풍성한 수확이 있었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 말하면 투자하는 것마다 대박을 터트렸다는 것이다. 주인의 신임과 총애를 한 몸에 받은 요셉은 누가보아도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형통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요셉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보디발 부인의 성적인 유혹이었다. 왕의 친위대장이었던 보디발은 업무가 바빴고 자주 집을 비우는 횟수가 잦아졌다. 그녀는 외로웠을 것이다. 성경은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다고 했다. 이런 요셉을 보고 끈질기게 동침할 것을 요청했다. 이국땅에서 혈육으로부터 팔려져 아무도 아는 사람 없던 외로운 요셉이었다. 똑같은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요셉은 그때마다 자리를 피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와 마주치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나갔다. 요셉은 자신의 본분을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녀가 다시 동침할 것을 요청하자, 자신을 변호하였다.
주인이 모든 것을 내게 맡기고 위탁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 당신을 금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창세기 아담의 모습을 본다. 에덴 동산을 창설하신 후, 모든 것을 맡기셨다. 단 하나 선악을 아는 나무는 먹지 말라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아담은 실패하였으나 요셉은 자신을 지킨다. 첫 사람 아담은 실패했으나 둘 째 아담 예수님은 성공하셨다.
여기에서 첫 번째 교훈을 얻는다. 형통한 자 요셉에게도 유혹은 찾아온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근거는 그의 고백대로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보디발에 앞서 하나님의 시선을 기억하는 것이다.
요셉은 자신을 지켰으나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인간 보디발에게 충성을 다하였으나 그는 노예에서 죄수로 추락하고 만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이것이 형통한 자의 삶이냐며 콧방귀를 뀌었을 것이다. 적당히 타협하고 즐기면서 살았다면 감옥에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 입방아를 찧었을 것이다.
여기서 두 번 째 교훈을 얻는다. 성실한 자 요셉에게도 시험은 다가온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요셉은 성실하였고 정직하였고 근면하였다. 옥중에서도 간수장의 눈에 들게 하셨다.
오늘 요셉처럼 형통한 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모든 믿는 이들은 형통한 자들이다. 지금 처해있는 환경과 처지가 제각기라고 할지라도 내 자신 형통한 자임을 믿고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