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4일 금요일
창세기 38:12-30
“다말”
막장 드라마의 끝은 유다와 며느리 다말 사이에서 쌍둥이가 태어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사연이 기막히다. 유다의 아내인 가나안 여인 수아 딸이 죽었다. 그 후, 그의 친구 히라와 함께 양털 깍는 자에게 이르렀다고 했다. 아들 둘을 잃고 아내마저도 떠났지만 아직 유다는 깨닫지 못했다. 자신이 서있는 곳이 떠나야할 곳임을...
방황하는 영혼이었다.
다말은 시어머니가 죽었음을 알고 있었다. 유다의 외로운 심정을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과부의 옷을 벗고 매춘부로 변장을 하였다. 유다가 지나갈 길목에서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유다는 그녀를 보자 흥정을 시작했고 동침을 하였다. 이로 인해 다말은 쌍둥이를 임신한다. 지혜로운 여인 다말은 그때 보증으로 담보물로 인장과 지팡이를 잡는다.
다말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 줄 알고 있었다. 임신 사실이 알려지자 유다는 그녀를 불사르라고 분노한다. 그럼에도 대를 잇기 위한 그녀의 이러한 행동은 절박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다말의 몸부림을 사용하셨다. 신약의 첫 장에 처음 등장하는 여인의 이름이 다말이다.
마태복음 1:1-3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다말은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믿음의 여인이었다. 행동하는 여인이었다. 가나안 땅에서 가나안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는 유다를 깨어나게 한 여인이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살아가던 유다에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깨닫게 한 여인이었다.
이처럼 입에 담기도 힘든,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이야기가 예수님의 족보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엄연한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씀이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장 안에 감추어진 네 얼굴을 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유다의 길에서 돌아서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유다가 믿음의 공동체를 버리고 떠났을지라도 그가 두 아들과 사랑했던 아내를 잃는 그 순간에도 함께 하셨다. 창녀로 가장한 다말과 잠을 잘 때에도 하나님의 시선은 유다를 향하고 계셨다.
아무리 돌아보아도 구원 받을 수 없는 누더기와도 같은 인생들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아니 오셔야만 했던, 아니 오실 수밖에 없으셨던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하심을 찬양하는, 아니 찬양할 수밖에 없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