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단을 죽이려다 죽이지 못한 때에도 그랬도
오늘 본문의 사건에서도 사울의 변명은 '백성'이었습니다.
즉, 자기가 백성을 위하는 왕이라는 자기자신에 대한 선한 이미지가 있습니다.
누구나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고 수고가 있고 얌체짓이 있는데 대체로 앞의 것만 기억하며
억울해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울은 여전히 백성앞에서 자기의 이미지에만 집착하고 있는데
그것을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자기의 수고에 포장하고 있습니다.
세종시로 이전을 해서 연구원이 오랫동안 정착을 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사방이 공사판이고 흙더미이고 차도 없는 경우 유배지나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 서울에서 이사를 오다보니 살림 장만 정리하는 일도 많다보니 늘 정착에 대한 이야기뿐입니다.
관심도 없는 대화에 참여하면서 차마시자면 차마시고 회의가 끝나고 잡담으로 한시간이 가도 그대로 앉아있었습니다.
연구원 조직이 관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구나 전공도 다른 타지사람이 와 있는 경우라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가 있습니다. 저에겐 그것도 고난이었습니다. 사실은 매우 큰 고난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보니 그것은 사람들과 잘 지내고자 하는 저의 이미지 관리였습니다.
내가 잡답이나 하러 이 난리를 치고 세종시 생활을 하나? 하는 생각에 이것이 구조적인 문제라면
나하고 맞지 않으니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이 순종이고 무엇이 집착인지 헷갈렸습니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제부터 끊어내기로 했습니다.
동료와의 관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함을 생각했습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앞에서 애통하는 것이 제사이지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시간을 내 목적대로 허비하며 조직에서 살아남는다는
목적에 집착하는 것이 순종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결국 불편한 동료의 얼굴을 보며 저는 그냥 저의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사실은 맞지 않는 문화와 조직속에 있는 것도 싫었지만
하나님이 보내셨으니 순종하는 마음으로 있지만
그러나 그 속에 또한 아각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말씀을 통해서만 혼돈된 저의 모습을 구분하여 깨닫고
나의 마음의 중심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향해 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잘 사용하기를 기도합니다.
내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구원의 목적을 위해 주신 시간임을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