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3일 목요일
창세기 38:1-11
“유다”
하나님의 말씀이 시작되는 첫 책 창세기를 읽으면서 그 적나라함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매일 드러나는 인간의 속살을 보면서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고 절망 가운데 몸부림치기도 했다. 어찌할 수 없는 막막함에 눈물을 흘리기를 여러 번이었다. 소리 나지 않는 오열이 온몸을 떨게도 하였다. 어쩌다 에녹 같은 인생, 노아와 같은 의인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죄 가운데 먹고 마시고 왁자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가장 사랑해야할 혈육을 향해 칼을 들이대는 가인에게서 내 속에 도사리고 있는 미움을 보면서 할 말을 잊기도 했다.
오늘은 이불 속에서 일어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런 내용은 좀 빼도 구속사를 이어가는데 모자람이 없을 것 같은데 굳이 이와 같은 내용을 기록해야만 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솔직한 책이다. 가장 정직한 책이다. 하나님 말씀이다.
인생들의 적나라함을 통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내 얼굴을 보게 하신다. 나의 죄가 야곱의 행적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38장 1절은 그 후에로 시작한다. 요셉을 팔아버린 유다는 아버지의 슬픔 속에서도 세월이 흐르자 동생을 팔아버렸다는 두려움도 희미해진다. 그는 예전과 다름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가나안 여인을 선택했고 아들 셋을 두었다. 맏아들 엘을 다말이란 여인과 결혼을 시킨다. 그러나 얼마지 않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던 엘을 하나님께서 죽이셨다. 둘째 오난이 형을 대신해서 대를 잇기 위해 형수와 결혼을 하였다. 그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므로 죽음을 면치 못했다. 이때 아마도 유다는 다말을 사람 잡아먹는 여인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막내아들을 줄 수 없었기에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기다리라며 며느리 다말을 친정으로 보낸다.
그는 막내 요셉을 팔아버리는데 앞장 섰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막내아들을 아끼는 유다에게서 이율배반의 모습을 본다. 야곱의 슬픔을 이때쯤 유다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아들을 먼저 앞세우는 아픔을 당하면서 요셉을 기억했을 것이다.
유다는 이때 슬픔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야곱의 눈물을 기억하였다. 부모의 마음을 배우게 되었을 것이다.
오늘 나에게 다가오는 아픔과 고난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