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속에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작성자명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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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2.08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말씀으로 제자들과 무리를 양육하시고
우리의 연약한 믿음으로 인해 치유의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살아 있는 말씀을 듣고 또 기적을 보고도
더 큰 기적을 보여 주기만을 원하는
소경 같은 믿음을 가진 지체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요나의 표적 밖에 보일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죽어야 다시 살고 죽어야 볼 수 있는
그 말씀을 보면서
저 역시 내가 죽어야 제대로 볼 수 있고 제대로 살 수 있음을
느낍니다.
아직도 완악한 내가 죽지 못한 내가 있어
등불을 등경위에 놓지 못했습니다.
내 속에 빛이 어두워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불 빛을 가리려고 했지 비추려고 하지 안았습니다.
최근, 주님께서
왜 내게 가족도 아닌데 그리 힘든 지체를 붙여 주셨고
또 내가 왜 그렇게 정의를 가장해서
그에게 분개를 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리가 그를 싫어하고 욕한다고
나는 무리보다 더 심하게 그에게 손가락질 한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는 내 버리고 싶은 나의 과거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불과 몇 달 전
식사 자리에서 조차 내 이름이 거론 되면
밥맛 떨어진다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욕을 먹던 제 모습 입니다.
나밖에 모르고
이기적이고 부족한 사람 무시하고
화는 불같이 내고
근태도 엉망이고 모범이라고는 보이지 못하고
회사, 법인 카드 내 멋대로 쓰고 내 사리사욕 채우고
내 것만 챙기고
내 아래 사람들의 말은 죽어도 듣지 못하고
오로지 오너의 말에만 귀를 기우리던 모습
늘 곤고하며, 그 곤고함을 이길 헛된 것을 찾던 내 모습입니다.
그런 모습을 그에게서 그대로 봅니다.
너무 흡사하게
제가 무리 보다 그를 더 미워한 것은
그에게서 지우고 싶은 내 과거가 자꾸 보였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내가 빛을 가리우니 내 속에 빛이 없어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등경위에 빛을 올리고
그에게 먼저 사과를 했을 때
그에게 대한 미움이 사라졌습니다.
내가 불우한 어린 시절이 싫어
초등학교 또래 애들을 싫어했던 것처럼
내 직장 생활 최대의 지옥 생활에서의 내 모습을
그를 통해서 그대로 보기 때문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내게 평안한 직장과 함께 그를 허락하심은
아직 내가 돌아보지 못한 내 모습
아직 다 고백하지 못한 그 모습
아직도 죽지 못한 나를 위해서
내게 보여 주신 요나의 표적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겉으론 아닌 척 강한 척 해도
그가 얼마나 곤고할까를 생각하면서
미움이 불쌍함으로 바뀌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지금까지 머리로 깨닫고
지키지 못한 저의 완악함을 회개 합니다.
네 속에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는 주님의 말씀이
제가 천둥처럼 와 닿으면서
내 속이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저를 회개하며
영적이 내 눈이 밝아 지기를
그래서 어두운 곳이 없이 비추어 질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아직 내 마음에 어두운 곳이 있어
제대로 보이 않는 모든 것이 비추어 지고
감추어진 저의 모든 죄가 빛 가운데 들어 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