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에 겨운 삶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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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2.06
2008-02-06(수) 누가복음 11:1-13 ‘복에 겨운 삶’
교회 소식지 ‘우리들 이야기’ 기사 취재차 방문했던
새터민 청소년들을 위한 기독교 교육 공동체인 여명학교에서
그곳 학생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데 대해 어색해 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는데, 그 이유는
죽음을 담보로 강을 건너, 남한을 선택한 그들에게
북한의 지옥 같은 환경에서, 어릴 때부터 각인된 아버지의 이미지는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수 있는 능력 있는 아버지가 아니라
주린 배도 채워주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랍니다.
대부분 외톨이인 그들은 새 조국에서 진정한 아버지를 만나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한 능력을 경험하며
문자 그대로 ‘경외함’을 느끼는 듯했습니다.
대표 기도를 얼마나 유창하고 은혜롭게 하던지
슬며시 눈을 떠보니, 앳된 학생이 원고도 없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절절한 심정을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그들이 생각난 것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넘치도록 넉넉한 선친의 사랑을 받고 자란 내가
내 자식들에게는 그런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선친의 사랑을 대물림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많은 후회를 하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늦은 나이에, 하나님 아버지의 한량없는 은혜로
내가 죄인임이 깨달아짐에도, 오히려 죄인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죄인에게도 차별없이 주시는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이제 받은 사랑을 나누고 전해야 한다는
내게 주신 사명을 어렴풋이나마 자각할 수 있게 된 결과
이 땅의 모든 자식들에게 그 사랑을 전할 수 있다는 희망이
마음속에서 점점 자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아버지는 나에게
좋은 것, 가장 좋은 것만 주시는 분임이 깨달아집니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께
건절하게 달라고 구한 적이 있었던가...
달라고 할 면목도 없어서
달라고 해서는 안 될 죄인이라고 스스로 정죄한 기억은 나는데
나는 정말 달라고 강청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면목이 없어서 내지르지 못하고 안으로 기어들기만 한
모기 소리만한 내 신음을 다 들으셨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지금의 환경이,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모든 성품을 감안한 최적의 환경임이 깨달아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나를 견인하시고
말씀의 말뚝에 단단히 묵어주시고
내 자식들에게도, 내가 주지 못한 사랑까지 두 배로 주시는
우리 아버지의 자식 사랑 방식은
참으로 절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외함의 눈빛으로 나만 바라보고
내 손 꼭 잡기만 하라는 그 말씀이 깨달아짐에
아버지 손잡고 동행하며 그 온기를 전하는
통로의 역할만 온전히 할 수 있어도
나의 남은 연한은
복에 겨운 삶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