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4:1-8)
요즘은 솔직히 너무 거룩(?)해져서 버릴 음란도, 따를 색욕도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나이 탓인지... 일 때문인지...
어쩌다 날라오는 동문회 카톡도 그저 야한 영화장면 정도에 불과하고, 회식자리도 2차는 가본 적이 오래되어서 요즘의 밤문화도 잘 모르겠습니다. 직장에서도 여자 제자나 직원을 태울 때면 다 교육이 되어서 알아서 뒷자리에 앉고, 나와 면담을 할 때도 알아서 문이 완전히 닺히지 않도록 문틈새 끼우기를 하고 들어올 정도가 되었으니...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제는 환경이 지켜주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 어떤 것으로 나에게 주시나?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6)” 묵상이 됩니다.
‘이 일’은 무엇이지? ‘분수’는? 왜 ‘형제를 해하지 말라’고 뚱딴지 같이 튀어 나왔지?...
내가 거룩을 지켜 색욕을 따르지 않는 ‘이 일’에, 다른 사람의 음란과 색욕#51922;는 행동에 ‘분수를 넘어서’, 맘속으로 정죄하고 무시하고 비방하는 행위로 ‘형제를 해라지 말라’ 고 하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들공동체에 처음 왔을 때, 바람, 중독의 사건들이 너무나 큰 약재료로 사람 살리는 일로 쓰이고 칭찬받는 것을 보고, 역차별의 아픔과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고, 한편, 교회를 오래 다니면서도 끊지 못하는 중독을 보면, 솔직히 안타까움을 넘어, 정죄와 무시의 맘도 들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이 ‘형제를 해하는 행위’라 지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저 기다려주고 권면하라 하십니다. 그저 삶의 본으로 경계케 하라 하십니다. 즉, 분수를 지키라고 하십니다. 나머지는 주님께서 알아서 신원해 주신다(6) 하시고, 그런 권면도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저버리는(8) 행위라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너나 잘 하라’고 하십니다.
전에 연예인 목원 집사님이 샌드라 불럭이 벗고 나온다고 해서 바로 다음날 ‘그래비티’ 영화를 보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나오고 허무하게 끝나서... 결국 투덜거린 적이 있습니다. 그 집사님 왈... ‘내가 언제 다 벗는다 했어요? 그냥 벗는다고 했지 .....'
기회가 안되고, 환경이 주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남자는 다 짐승임을 믿습니다.
적용> 음란의 죄로 힘들어하는 주변 사람을 찾아가 들어주고 나의 음란을 간증하며 위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