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8일 금요일
창세기 36:1-19
“에서의 자손”
인간의 눈으로 보면 에돔은 축복받은 자였다. 그들만의 문화와 왕정체제를 이루며 번성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야곱과 12명의 아들들을 보면서 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 만들어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들로 보인다.
에서와 야곱의 삶을 추적해보면 에서는 이후에 세일산에 거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두 사람의 소유가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실권자였던 에서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버리고 세일을 선택했다는데서 에서의 신앙을 엿볼 수 있다.
똑같은 목축업자의 삶을 살았지만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에 기대서 살았고 에서는 자신의 판단에 의해서 살았다는 것 외에는 별달리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다.
에서는 현실에 기대서 사는 자였다. 그렇기에 세상을 보는 안목이 남달랐을 것이다. 그의 판단은 언제나 현실에 머물러 있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노예처럼 살아갈 때, 에서는 가나안 땅에서 일가를 이루며 평탄한 삶을 살았다. 누가보아도 남부러워할 만한 번성을 이루고 있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야곱의 삶이, 에서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이 걸어가는 길이 다르다는 것은 이 땅에서의 형통이 아니라, 그의 가슴 속에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로 판가름된다.
147년 동안 야곱의 굴곡진 삶을 통해서 내가 만나야할 또 다른 시선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다는 점이다. 그는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성실하기는 했지만 야비한 이중적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될수 있었던 것은 그의 행위가 아니었다. 하나님을 향한 단 하나의 시선 때문이었다. 야곱이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갈 때에도 그의 손을 놓지 않으셨다. 그가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도록 세월이라는 끌을 가지고 다듬으셨다. 시련을 통해서 그를 만드셨다. 그가 바로 앞에 섰을 때, 그때까지 살아온 130년을 요약하면서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다고 말한다. 이 짤막한 그의 고백 속에 담긴 험악한 세월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오늘 에서의 족보에서 반복되는 구절이 있다.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 “에서의 아내인 오홀리바마로 말미암아 나온 족장들이라”는 표현이다. 모계사회가 아닌데도 에서의 자손이라는 말 대신에 그의 아내의 자손들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혈통을 구별할 때,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유대계일 때, 유대인으로 인정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머니의 영향력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적인 메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