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3일 목요일
사무엘상 8:1-22
“세습왕”
■ 세습
인터넷을 켜자 눈에 들어오는 한 줄의 기사가 눈에 뜨인다.
"김지연 아찔한 란제리 사이로 드러난 깊은..."
가히 성 유혹의 홍수 속에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눈 둘 곳이 마땅하지 않는 이 시대를 성 미디어의 홍수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런 시대에 내게 맡겨진 자녀들에 대한 신앙교육은 얼마나 준비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사무엘이 늙었다. 다음 세대를 준비하면서
사무엘의 선택은 자신의 두 아들에게 사사 직을 물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그토록 신실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온
사무엘의 아들들은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는 등
아버지의 신앙을 물려받지를 못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는 왕을 세워 달라는 것이었다.
한국 대형교회의 세습 문제가 사회적으로도 이슈화가 되고 있다.
교회의 사유화가 빚어낸 비극의 시작이라 하겠다.
그 뿌리의 시작은 총회장 선거 등에서 금권선거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돈으로 명예를 사들이는 이런 교단들의 행태를 보면서
더구나 개인이 개척하여 세운 교회이기에 내 교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교회 사유화가 빚어낸 결과물이라 생각된다.
남의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니라 나의 아이들에게
이제라도 말씀을 가르치고 함께 Q.T를 생활화 하게 하고
함께 나누는 날을 가짐으로서 신앙의 세습화를 이루고
하늘 길을 함께 걸어가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잘 하겠지
언젠가는 돌아오겠지
막연한 기다림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부와 명예의 대물림이 아니라
신앙의 세습화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지금 바로 실천해야만 한다.
절박함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 왕
오는 본문은 아이가 자라서 부모의 손을 뿌리치고
혼자 걷겠다고 걸어가는 위태함을 보는 것 같다.
왕을 세워달라는 동기가
20절-"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는 신정통치가 싫어졌다.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니 그것이 그럴듯해 보였다.
우리도 다른 나라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20절 한 절에 '우리'라는 단어가 무려 다섯 번이나 등장하고 있다.
하나님의 통치로부터 벗어나서 사람의 통치를
갈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오늘도 세상에 더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내 모습을 본다.
이스라엘 백성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왕을 선호했다.
왕정제도의 폐해에 대해 구구절절이 설명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집 나간 탕자가 떠오른다.
재산을 달라고 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분가를 허락하셨다.(눅15:11-32)
여기서 기도의 원리를 본다. 때로는 허락하시지만
아버지의 뜻이 아닐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다시 보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