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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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65279;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65279;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65279;- 사무엘상 6장19절#65279;#65279;#65279;
율법에 의하면 언약궤는 아론의 후손 중에서도 '
#65279;고핫자손'만이 만질 수 있고, #65279;옮길 수 있었습니다.
#65279;벧세메스 사람들은 일년에 서너 번 실로에 가서 제사 드릴 때, #65279;
#65279;대 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 들어 갈 수 있다는 지성소 내부가 늘 궁금했습니다.
#65279;모세 때부터 지성소에 두었다는 십계명 돌판이 어떻게 생겼는지,
#65279;하나님이 새긴 글씨는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65279;그런데 마침 자기 동네에 블레셋에서 돌아온 언약궤가 도착한 것입니다.
#65279;언약궤를 구경하려는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언약궤를 열고 그 속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65279;언약궤를 한낱 구경거리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
- 나는 말씀을, 예배를 한낱구경거리쯤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요?
벧세메스 사람들이 언약궤를 구경하다 안을 들여다보다 하는 대목에서
#65279;어느 목사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우리가 쉽게 얘기하는
#65279;'예배를 보다'라는 말이 틀렸다고 하십니다.#65279;#65279;
우리 말 중에 '굿이나 보다'라는 말이 있는데 '예배를 보다'가
#65279;이 '굿을 보다'에서 유래한 것이고 '예배를 드리다'가 맞는다고 하십니다.#65279;
아무 뜻없이 하는 한마디가 예배에 임하는 나의 진정성을 나타낼 수 있다고 하십니다.
말씀에 대한 예배에 대한 나의 태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65279;이전에는 설교 말씀을 내 마음을 위로해주는 좋은 말로,
#65279;찬양은 입이 즐거워지는 노래 정도로, 기도는 쉬는 시간으로 생각하며
#65279;예배의 구경꾼이었던 적이 많았던 것을 깨닫습니다.
#65279;그러나 지금은 말씀을 받아적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주셔서
#65279;예배에 집중케 하시니 그것이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65279;#65279;#65279;#65279;#65279;
예배를 보고 있습니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65279;내 자신에게 반문해보는 아침입니다.#65279;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될 수 있도록 복장을 단정히 하고
#65279;예배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바로 하겠습니다. #65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