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0일 사무엘상 6:1~18절 ‘번제와 다른 제사’
왜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는가? 왜 그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는가?(15절)
나는 막내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할아버지,할머니,작은형,큰형이 차례로 죽는 걸 보고 인생이 허무하다고 느꼈고 내 자신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결혼전 남들이 다 원하는 아들대신 딸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남자라면 나와 같은 고민과 생각과 행동을 할 것 같아 그게 싫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원했던 딸이 태어나던 날 하나님께 바친다고 기도했기에 그 후론 딸에 대한 걱정을 안했었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지켜주시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큰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운전면허를 따서 출장을 가려는데 연수겸 같이가서 봐주라는 아내의 말에 조수석에서 딸이 운전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마치 내가 처음 운전할때와 똑같이 운전을 하기에 너무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한동안 큰애가 싫었었습니다. 그러나 나 같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것, 나만 닮은 것도 아니고 아내의 반은 닮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싫은 감정을 지웠습니다.
어제 교회에서 돌아오는 차안에서 친구와 통화하는 내용을 들었던 아내가 또 상대방을 두둔하면서 내 혈기가 다시 올라왔습니다. 담임목사님 말씀의 분별과 비방에 대한얘기였는데 나보다 상대방이 더 잘알고 있을테데 내가 훈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다툼 끝에 항상 터졌나왔던 혈기는 그날 터지지 않고 ‘무시하는 것냐?’라는 분별된 말이 나오고 작은딸이 옆에서 수습의 도움이 되서 다툼이 정리되었습니다. 다툼중에 작은애는 당신닮아 끔찍이 사랑했지만 큰애는 날닮아 좀 실었었다고 했는데 이말이 맘에 걸려 잠을 좀 설쳤습니다. 그러나 어제 일은 수십년만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다툼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블레셋 사람들이 보내온 여호와의 궤와 금 보물을 실고온 젖소를 가지고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렸다(15절)고 했듯이 나는 내 상황에 처해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기도를 했던 것 같습니다. 딸들을 낳았을 때, 사업이 망해가고 있을 때, 큰애가 울먹였을 때, 작은애의 마음이 요동칠 때, 아내가 눈물을 흘릴 때, 내가 너무 힘들어할 때... 하나님 감사합니다.
적용/ 감사해야 할 것을 10분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