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6:1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있은 지 일곱 달이라
삼상6:7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삼상6: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삼상6:14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작년 5월에 이 본문의 주일 말씀을 듣고 적용을 시작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언약궤를 지고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사명을 감당한 두 마리의 암소가 개인적으로 매우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사명을 위해서 새끼 송아지와 생이별을 하는 아픔을 당한 두 암소는, 다른 성경을 보면 벧세메스로 가는 길 내내 울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슬프고 아팠으면 가는 길 내내 울었을까… 하고 싶지 않은 것을 꾹 참고 하는 것이 적용이기에 당시 나도 울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가며 적용했던 생각이 납니다. 난생 처음 소가 체휼됐습니다.
그렇게 울면서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바로 행한 두 암소는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운반하는 큰 사명을 잘 감당했고, 일곱 달 만에 언약궤가 블레셋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기한을 알 수 없었기에 말씀에 따라 ‘적어도 일곱 달’이라고 생각하며 시작했던 나의 적용의 사건을, 신기하게도 일곱 달 만인 작년 12월에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연은 없다고 했는데, 정말 우연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언약궤를 운반한 암소의 사명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언약궤 운반의 사명을 잘 수행했다고 대접받고 대우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번제물로 드려졌습니다. 암소의 사명은 언약궤를 운반하는 것만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려지는 것까지였습니다. 거룩한 일에 사용된 수레와 암소는 세속적인 일에 사용될 수 없었기에 번제로 바쳐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온전히 바쳐진 사명자의 모습이겠습니다. 적용만으로 끝이 아니라 암소처럼 번제물로 바쳐지는 삶으로까지 가야 한다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벧세메스를 향해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바로 행한 두 암소처럼, 말씀 안에서 세상을 돌아보지 않고 거룩을 향해 바로 행하며 주님 일에 쓰임 받는, 말씀대로 되어지는 인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듣고 볼 때, 이후에 같은 말씀을 다시 볼 때를 생각해서 묵상한 것을 잘 기록해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