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4:12-22)
얼마전 어느 선배교수님의 갑작스런 죽음을 보며 나의 죽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디서 죽어야 하나?
어떻게 죽어야 하나?
언제 죽어야 하나?
마지막 가는 모습이 그 사람의 삶을 대변합니다. 손양원 목사님도 그랬고, 그 두 아들도 그랬듯이... 평소 일상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어쩌면 죽을 때의 모습일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엘리의 죽음을 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혹시나 해서 ... 저의 책상 속, 책상 위도 한번 훑어 보기도 하고... 나의 마지막 유언은 무엇으로 기억되어야 하나... 그리고 누가 와서 나를 추모해 줄지.... 생각에 잠깁니다.
그러면서 가장 행복한 죽음이 자신의 삶과 사명의 현장에서 죽는 것이라 여겼는데... 오늘 엘리의 모습을 보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함을 깨닫습니다.
사사의 자리를 40년을 지켰고, 연륜이 98세에 이르렀지만, 결국 잘못된 처방으로 언약궤를 옮기게 하고, 3만명을 죽게하고, 두 자식을 죽게하고, 며느리까지 죽게 했으니 ....
하나님을 두려워 떨기는 했지만, 자기회개, 자기적용이 없는 삶의 결론을 봅니다. 나이가 많고 비대함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저 스스로 그냥 더 늙어가기 전에, '자리'의 교만과 오만의 비대함을 경계하여야 겠습니다. '처방'의 요행수와 타협함의 비대함을 조심해야 겠습니다. '나이'의 영적무지와 체험부족의 비대함에서 벗어나길 원합니다.
어제도 직장에서 나눈 대화들, 목장 탐방을 하면서 나눔했던 일들이 되돌아보아 지면서, 혹시나 제가 엘리였을까봐 겁이 납니다. 솔직히, 솔직히 초원지기 자리가 무척 겁이 납니다.
적용> 아프고 힘든 지체들의 만남, 목장탐방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제 죄를 먼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