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8일 토요일
창세기 27:41-28:9
“야곱과 에서”
장자권이 무엇이 길래 형제의 난이 시작되었다. 쌍둥이 형제끼리 죽이겠다는 형과 피신해야만 하는 동생의 비극을 본다. 이삭과 리브가의 잘못된 판단으로 형제끼리 되돌릴 수 없는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리브가는 자신의 선택이 야곱과의 영영한 이별이 될 줄 몰랐다. “네 형 에서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자신의 친정 밧단아람으로 피신을 시키면서 당부한 리브가의 말에 잘 나타나있다. 몇 날이 흐르면 에서의 마음이 풀릴 줄 알았다. 그러나 오늘의 헤어짐이 자신의 남은 생애 동안, 생이별의 고통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아무도 축복권 찬탈이 가져올 파장이 이처럼 클 줄은 몰랐다.
헷 족족을 아내로 맞이한 에서와는 달리 야곱을 가나안 땅을 떠나게 하신다. 아니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선용하셔서 그를 고향 땅으로 보내신다. 그때 이삭이 야곱을 위한 기도문 속에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인생의 입을 통해서 처음 등장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최대의 관심을 갖고 계신 일이 아브라함과의 약속이었다. 그 약속을 야곱을 통해 이루어 달라는 기도였다. 인생들의 그릇된 생각으로 어긋나버린 언약 백성, 야곱의 길을 바로 잡기 위해 일하고 계신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꿈꾸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야곱의 손을 잡으신 것이다.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인간을 품으시는 하나님의 모습 속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방결혼이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가 선택한 것은 이스마엘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을 얻으려는 인간적인 생각이었다. 인본주의 짝퉁신앙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면서 부족하지만, 연약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향한 나의 마음을 가다듬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