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6일 목요일
창세기 27:1-17
“편애”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있다. 자식 사랑은 동일하다는 뜻의 속담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편애에 대해서 극명하게 갈린 시선을 보여준다. 에서가 헷 족속의 딸들과 이방결혼을 한 것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음에도 이삭은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려하고 있다.
야곱과 에서가 리브가의 태중에 있을 때, 극렬한 다툼이 벌어지자 하나님께 여쭙는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창세기 25장 23절에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20년 동안 기다려왔던 아이였다. 기도하여 얻은 아이들이었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분명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음에도 이삭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자신의 뜻대로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하고 있다.
그가 눈이 어두웠다는 것은 영적으로도 많이 쇠퇴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때 리브가의 기질이 그대로 드러난다. 야곱을 에서로 변장하여 축복을 받게 하려한다.
이삭이 들에서 묵상하는 자였다면 리브가는 행동하는 여인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자신의 일생이 걸린 결혼 문제를 결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다음 날 미지의 땅으로 걸음을 옮기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여장부였다. 리브가의 이러한 기질은 장자의 축복권에 대해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망설이는 야곱을 재촉하여 자신의 계획에 가담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불신결혼을 한 에서에게서 하나님의 희망을 버렸다. 그리고 구속사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두 종류의 길에 서있다. 이삭과 같이 인간의 생각대로 걸어가는 길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야곱의 길을 가는 것, 길을 묻고 계신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한복음 1: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