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작성자명 [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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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1.23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2006년 초에 대장 용종이 암으로 나오는 사건이 있었는데 하나님 은혜로 치유되었었다.
그 후 계속 정기검진을 받았으나 아무 이상이 없어 6개월 후인 작년 4월에 오라고 했는데 미루고 안가다가 13개월이 지나서 몇 일전에 가서 검사했는데, 지난 19일 그 결과가 암으로 나왔다.
심각한 상태는 아닌 것 같으나 그래도 개복하여 대장절제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외과에 가서 예약하고 21일에 다시 와서 CT촬영을 하라고 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지만, 하나님이 나에게 뭘 회개하라고 주시는 사건일까? 생각하며
그날 말씀(눅6:12-26)을 봤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시고,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셔서 허다한 무리의 병를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들도 고치신다.
눅6:19절,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그리고 제자들에게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가르치신다.
아~그렇구나!!
날 제자삼고 본격적으로 구원의 통로로 쓰시기 위함이구나..
이제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내 주위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구원이 임하겠구나...
이 일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라 하시는구나...
해석이 되니 담담하고 평안했다.
그리고
회개할 것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태동이와 규동이가 세상가치관에 젖어 계속 머물러 있는데
그동안 나는 그들을 하나님께 내려놓고, 있는 모습 그대로 보아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요사이 아이들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다가오는데도
실천에 옮기질 못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만 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무슨 일을 하든 보아 줄 뿐,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여기까~지’하고 있었다.
아~주님은 한걸음 나아가라 하신다.
매주 화요일 저녁 9시경으로 가정예배를 드리자고 아이들에게 말한 후,
어제 처음으로 드렸다.
태동이와 규동이는 반발한다.
종교는 강요하는 게 아니라며 앉아 있지도 않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컴퓨터 화면을 보기고 하고 손톱도 깎으며 딴전을 피운다.
남편은 그 모습에 약간 못마땅한 표정을 보였으나
내 표정을 보더니 즉시 인내 모드로 들어갔다.
목장예배드리는 형식으로 하는데,
엄마가 대장암 진단을 받은 날인 19일 본문을 읽고,
나눔으로 우리들교회에 가서 지금까지의 일을 간단하게 말해줬다.
아빠도 불교를 35년간이나 믿다가 개종하게 된 이야기를 하고
치동이는 잘안되지만 하나님은혜로 적용하며 나아가는 얘기를 눈물을 글썽이며 간증했다.
사실 태동이와 치동이의 관계는 막혀있다.
연년생이기도 하지만 서로 관심사가 많이 다르다 보니 의사소통 되는 게 적어
거의 말을 안하고 지낸다. 아니 서로가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엊그제는 단둘이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까지 올라오는데
단 한마디도 안했다고 한다.
예민한 치동이의 숨막힘과 태동이의 어색함이 어땠을까?
대물림 되는 것이 아닌가...?
나 또한 성장하면서 큰오빠가 부모님께 불효하고 사람노릇 못한다고 많이 무시했고,
작은 오빠한테는 뺨 한대 맞은 적이 있어 그 이후로 쭉 말을 안하고 지내와
성인이 되어 집안 모임때 만나면 여전히 어색함이 컸지만,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겉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왔기에...
참으로 할 말 없는 엄마임이 느껴져 책임감이 무섭게 다가왔었다.
중간 중간 규동이는 거의 비스듬이 누운 상태에서 제 기호에 맞게 한마디씩 하고,
태동이는 너무나 생소한 광경인지 별 말이 없고 딴 짓만 하다가
엄마 대장암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외할머니가 대장암에 걸렸었으니까 엄마도 걸렸겠지!
외할머니가 나았으니까 엄마도 낫겠지, 뭐!” 한다.
마무리 기도를 남편은 눈물, 콧물을 쏟으며 했다.
사건을 주셔서 가정예배를 회복시키시는 주님의 은혜가 놀라웠다.
태동이와 규동이는 건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했으나
엄마, 아빠, 치동이의 나눔을 통해 분명 전해져 오는 느낌은 있었으리라..
콩나물에 물을 주면 물은 다 빠져 나가지만 콩나물은 자라듯이...
태동, 규동이의 구원과 태동, 치동이의 막힌 관계 해결을 위한 걸음마를 떼었으니
계속 인내하며 나아가야 하리라...
오늘 아침,
남편과 식탁에서 오늘 본문(눅7:18-35)으로 큐티나눔을 한다.
남편은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갈대냐,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들이냐” 는 말씀이
네가 무엇을 얻으려고 예수께 나아왔냐
구원이냐, 은금이냐 로 질책하시는 말씀으로 들린다고..
바리새인과 율법사처럼 구원잔치가 열렸음에도 기뻐하지 않고
너희를 위해 울어줘도 도무지 모르고
엉뚱한 소리만 하며 미련을 못버리고 주식을 끊치 못하느냐고 말씀하신다고 한다.
이어서 난,
먼저 부르심을 입은 자로서 당신이 가정의 영적, 육적 제사장으로 바르게 설 때까지
깨어 있어 잘 인도해야 하는데...
인본주의를 끊치 못해 끝까지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고 잘못 인도한 것을 회개한다고,
나도 당신이 주님을 모르던 때와는 마음 자세가 다르니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내 잘못이라고, 주님께서 안타까워 하시며 내게 책임을 물으신다고 자복했다.
참으로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다.
갚을 길 없는 은혜다.
2년 6개월전,
우리들교회에 처음 발걸음을 디뎠을 때
오늘 이렇게 한 언어로 나눔을 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동안 적지도 않고 대~충 했던 큐티를 제대로 적으면서 하도록 바로 잡아주시고
이렇게 한 언어로 통하게 해주신 은혜는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갚을 길 없는 은혜이기에
‘하나님의 은혜’ 복음성가가 절로 흘러 나온다.
이렇게 사건을 주지 않으면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날 깨우시는 사건이기에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