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노인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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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1.23
2008-01-23(수) 누가복음 7:18-35 ‘아름다운 노인’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29,30절)
성령의 세례도 아닌 요한의 물세례는,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었던
백성 누구에게도 차별 없이 개방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구원의 통로였지만
한 번의 선택이 백성들 사이를 ‘하늘과 땅 차이’로 갈라놓았음을 봅니다.
동족의 재산을 강탈하는, 로마의 개로 멸시 받던 세리들도
요한의 세례를 받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깨달음으로써 몸은 땅에 있을지언정 마음은 하늘을 누릴 수 있었지만
경건한 바리새인들과 백성을 가르치는 선생이던 율법 교사들은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결과
하늘까지 뻗친 외식으로 무장한 경건과 거룩의 겉모습을 갖췄지만
그 내면은 땅의 더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겁니다.
백부장의 믿음도 요한의 세례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세리의 구원도 요한의 세례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본문을 묵상하며 세례의 의미와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세례도 받고, 침례도 받은 기억이 나지만, 그 의식을 치르고도
말씀이 주는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깨닫지 못했으니
당시의 세례는 ‘개발의 주석 편자’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요즘, 수시로 치러지는 우리들교회 세례식에 참석할 때마다
내 안에서 아쉬움과 설레임의 두 마음이 교차함을 봅니다.
하나는 내가 그 세례식의 주인공 되지 못하는 아쉬움이고
하나는 내 손자, 이 땅의 많은 손자들을 주인공 되게 하고 싶은 살레임...
2003년 5월 4일, 내가 처음 참석해서 예배 드리던 날 시작되어
그 때부터 지금까지, 한 명의 대상자를 목사님이 품에 안고
기도하고 예배당을 행진하며 온 성도의 안수와 축복 속에
흥겨우면서도 거룩하게 치러지는 유리들교회의 유아 세례식은
한 영혼의 탄생부터 성장의 전 과정을 부모와 함께 하며
말씀으로의 양육을 감찰하고 중보하기를 결단하는
온 성도가 주인공인 하나님 나라 축제로 자리 잡은 지 오랩니다.
내 자식은 그 축복을 누리게 하지 못했지만
내 손자는 그 축복을 누리게 하고 싶고
내 손자, 이 땅의 많은 손자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그들에게 노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 세상 가장 큰 지혜인 말씀으로 깨달은 아버지의 의로우심을
삶으로 증거하는 노인, 아름다운 노인 되기를 아버지께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