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짐이냐...시험 들어 실족한 것이냐?
작성자명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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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1.23
삐짐이냐...시험 들어 실족한 것이냐?<눅>7;18~35
지혜는 하나님은 늘 언제나 항상 옳으시다는 사실을
입술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믿는 믿음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마음에 동하는 바가 있고
성령께서 감동을 주실 때 사람에게 다가가 전도하게 되는 데 그 때마다
듣게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도 한 때는 교회에 다녔었다’고 하는 말들을...
그럼 왜 지금은 안 다니는가 물으면
‘바빠서’가 주류를 이루고
‘교회와 사람에게 실망해서 시험받아 실족했다’ 가 그 다음을 이룹니다.
그리고 스스로 실족했다고 하는 이들에게서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어 보려했었던 동기에 공통점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질병을 고쳐 보려고
우리 아이 공부 잘해서 좋은 학교 보내려고
사업이나 일터, 시작한 장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또는 결혼 상대자를 만나기 위해서와 같은 이유들이 많음을 봅니다.
그리고 이들이 택한 이런 동기가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기대치는 분명하게 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이런 동기와 이유가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 목적이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동기와 기대치로 교회를 찾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들이 목적한 바가 이루어져도 또는 안 이루어져도
역시 이들은 교회를 떠납니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 교회를 안다니는 이유와 변명을
누구누구에게 실망하여 시험 들고 실족했다고들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짧은 생각으로는
이들은 삐진 거지 시험 든 게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시험도 믿음이 있어야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광야로 보내어 훈련하시는 시험도
나의 믿음과 신앙 성숙을 위해 필요했기에 보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축복을 주시기 위해 담을 만한 그릇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이 광야를 통해 주시는 [시험이요 연단]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연단도 감당할 만큼만 주신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고난의 무게가 가중하면 할수록
‘아..내가 수준이 좀 있구나..’ 하면 훨씬 위로가 되고 또 그렇게 믿으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목적이 나의 유익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목적은 오직 [구원]에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예수를 믿는 목적이 [나]를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익이 남는 일에 관심을 집중합니다.
그래서 버리기를 아까와 하고 내려놓기를 주저합니다.
영적인 일에 투자하기는 지극히 인색하면서도
하나님께 받을 축복에는 그 욕심이 매우 많음을 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내 것을 내려놓으면 그 빈자리를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겐 이것이 잘 안 됩니다.
가진 것도 없는 데 무얼 내려놓고 비우라 하느냐고 항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합니다.
가진 것이 있기에 시험에 드는 것이라고...
약1;12~13을 살펴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하시고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셨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도
[누구든지 나(그리스도)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역시 그랬습니다.
예수를 믿는 방향과 목적 그리고 가치관이 분명해야 합니다.
나에게 이것이 없었다면 나도 벌써 실족했었을 것입니다.
나도 한 교만했었고 강퍅했으며 깨지지 않는 성품으로 인해 광야로 보내졌었습니다.
다듬어지기 위해...AS를 받아 정품으로 만들어 사용하시려고
고난의 연단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이 축복이요 천국을 여는 약재료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정말이지 파란만장한 광야였습니다.
예수 믿고 주의 일 하는 데...이일이 어찜입니까? 하면서 의문도 가져 보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광야에서 바라 본 것은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도 아니었고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를 만나기 위함이 아니라
말씀을 만나고 말씀의 예방주사를 맞기 위하여 보내졌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내려놓고 나를 부정하니
나는 100% 죄인이요 하나님은 다 옳으시다는 고백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부정한다는 것이 내가 지닌 생각들을 다 내려놓는 것을 뜻합니다.
욕망, 야망, 탐심, 탐욕, 정욕 등의 세속적 가치들을 [회개]를 통해 버리는 것이
나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나의 한계를 깨닫고
나의 알량한 경험, 지식 따위를 다 내려놓고 십자가에 나를 맡기는 것이
내 십자가 지고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때문에 내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는 엄청나게 많은데
나는 내 십자가가 하나도 무겁지가 않습니다.
주님이 대신 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염려 근심 대신으로 평강과 안식이 주어집니다.
천국을 맛보며 에덴을 회복해 가고 있습니다.
그랬습니다...바로 믿음이 중요한 단서이며
올바른 신앙의 가치관 정립이 [삐짐]이냐 [시험]이냐를 가르는 척도이며
예수를 믿는 목적이 [구원]에 분명한 초점이 있을 때
하나님께 드릴 영광을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