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01 진정한 기도 사무엘상 1:1-18
사무엘상 1: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아빠라고 불리지 못한 아비
저는 회사에서 9살이나 어린 신입 여직원과 연애하던 중 혼전 임신으로 결혼하였기에 외동딸이 제게 주는 의미는 아주 특별합니다. 그 당시 방탕한 생활에서 회개하여 신앙의 열심을 내고 있었기에 전 부인의 임신 사실을 알자 성당에서 초신자 교육을 받게 해 결혼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내 출산한 외동딸을 유아 영세시키며 세례명을 ‘소피아’로 지었고, 하나님께서 쓰신다면 반대하지 않고 감사히 받아들이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이 딸로 인해 성당에서 신결혼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혼 5년 만에 별거가 시작되고 8년 만에 이혼을 하게 되자 한동안 외동딸과 함께 살지 못하게 되었지만 격주로 만나 꾸준히 성당에서 예배를 보며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재혼하려는 전 부인이 11살이 된 딸을 제게 보냈고, IMF 사태로 인해 할머니와 셋이 함께 살게 된 딸에게 사춘기가 찾아왔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사진 일을 시작하여 술과 젊은 여자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며 성당에 나가지 않았고, 전 부인에 대한 서운한 감정으로 딸을 무시하고 구박하며 제대로 돌보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외동딸이 청소년기를 겪으며 어려움과 애정을 호소했지만 이기적인 저는 냉정하게 대하며 갈등을 키웠습니다. 급기야 고등학교 1학년 때 첫 가출을 한 후 별 탈없이 3주 만에 돌아왔지만 불편한 관계는 점점 깊어졌습니다. 대학 입시에 낙방한 딸과 격한 다툼 끝에 두 번째 가출을 한 후 40일 만에 돌아왔지만, 그 사이 경제적인 어려움과 심적으로 피폐해있던 저는 죽음을 생각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딸이 있었기에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 후 외동딸은 ‘우리들교회’에 함께 다니며 재수 끝에 대학에 합격했지만, 아버지가 삶에서 보여준 것이 없어 이내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동안 상처 준 것이 너무 많고 마음의 상처가 너무 깊어 ‘아빠’라고 부르지 않는 삭막한 관계가 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목장예배에서 처방을 받고 딸에게 무릎 꿇고 눈물의 회개와 사과를 세 차례나 하고 나서야 다시 ‘아빠’라 불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양육하지 못했기에 제가 치러야 할 대가가 이토록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죽지 않고 살아서 외동딸과 한 지붕 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직 알콩달콩한 관계는 못되지만 이제는 ‘아빠’라고 부르며 필요한 대화도 하니 정말 큰 발전이고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서원을 지키지 못한 저를 용서하시고 딸을 구원으로 이끌 기회를 다시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살아 생전에 딸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보지 못할지라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