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7일 목요일
창세기 25장 1절로 11절 말씀
“에덴의 동쪽”
믿음의 일세대가 막을 내린다. 아브라함은 일백칠십오 세를 일기로 열조에게로 돌아갔다. 칩십오 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백 년 동안 믿음의 길을 걸었다.
오늘 본문의 시작은 그의 죽음 앞에서 언급하는 자손 이야기이다. 그에게는 후처 그두라에게서 난 여섯 형제가 있었다. 특이한 점은 살아생전에 재산 분배를 마쳤다는 것이다. 모든 재산을 이삭에게 주었고 서자들에게도 일정한 재산을 나누어주고 이삭을 떠나 동방의 땅으로 가게 하였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취한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이 태어났을 때부터 빚어진 갈등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거듭해서 이삭이 상속자임을 분명하게 밝히셨으므로 분가라는 방식으로 미래에 있을 갈등을 해소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것은 영적인 의미에서 거룩함의 본질을 보여준다.
최초의 살인을 저질렀던 가인이 정착한 땅이 에덴의 동쪽 놋 땅이었다. 이삭의 이복형제들이 거주할 땅이 동쪽 동방이었다.
이것은 언약의 백성이 살아야할 땅은 구별된 곳임을 시사하고 있다. 동편에서 해가 떠오를 때마다 이삭은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과 함께 하지 못하고 떠나야만 했던 이복형제들을 통해 언약 백성의 삶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그에 반해 가인의 집안사람들은 항상 해가 질 때면 서쪽하늘 아래에 있는 에덴동산이 있었던 땅을 쳐다보았을 것이다. 또 에덴 저편에 살고 있는 자신의 또 다른 형제들의 땅을 바라보고 추억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인은 자신이 태어난 땅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가인이 에덴의 동쪽 놋 땅에서 처음으로 한 일이 성을 쌓는 일이었다. 너와 나라는 경계선을 긋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도 문화라는 이름의 성을 쌓고 개인주의의 성벽을 쌓고 있다. 그러므로 에덴의 동쪽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삶이 녹아 있는 곳이다.
동성애가 합법화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세상은 더 잘 살기를 소망하며 바벨탑을 쌓고 있다. 잘 사는 것이 부의 축적에 있다며 외치고 있다. 그러나 잘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믿음의 삶’인 것을 돌아본다.
아브라함은 열조가 묻힌 하란 땅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약속의 땅에 묻혔다. 거듭해서 소개하고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다.
오늘도 인본주의가 판치고 있는 에덴의 동쪽을 바라보며 나의 삶을 점검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