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적 영적 가난에 처한 너희’와 함께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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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1.19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는 가난한 자보다 더 도덕적이다.
부자는 남을 돕고 기업을 만들고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월급을 준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남을 도울 수가 없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보수 논객의 주장인데 그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가난은 자랑이 아니다. 청빈(貧)이란 말보다 더 좋은 말이 청부(富)다.
정상적으로 돈을 벌고 좋은 곳에 그 돈을 쓰는 것이 가장 큰 도덕이다’
‘지당하신 말씀’이라고 생각되면서도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육적인 가난의 열등감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20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이 말씀이 좋아지기 시작한 게 불과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심령의 가난이든, 육적인 가난이든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니
육적인 가난의 때를 지나고 있는 저에게는 큰 위로가 됩니다.
그러나 가난의 환경으로 저를 견인하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육적인 가난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가졌던 것 중에도 처음부터 내 것은 하나도 없었음을 깨달아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라는
디모데전서 6장 17절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아버지 품을 떠나
내 힘으로 이루어 세상의 칭찬을 구하려 했지만
결국 탕자의 모습으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게 하셨으니
이미 나는 분에 넘치는 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받은 복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육적인 풍성함을 나누며 생색 내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가득하여
나눠줄 게 마음밖에 없는 지금의 환경이 안타깝지만
‘너희 가난한 자’ 라 칭하신 본문의 말씀처럼
‘육적 영적 가난에 처한 너희’를 공동체로 불러 모아
한 형제로 묶어주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가난의 짐도 함께 지며
주시는 복을 고루 나눌 때, 그 복이 백 배, 천 배가 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의 비밀을 깨닫기 원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하신 하나님께서 복으로 주신,
고난 중에 가장 수준 낮은 고난이라는 재물의 고난을 통해
재물 뿐 아니라 심령의 파산 상태까지 깨닫게 하시니
나의 죄를 날마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낮아지고 더 비워서
하나님이 채워주실 공간을 만들 수 있기를
그리하여 이 죄인도 하나님의 나라에 거하는 은혜를 누리며
‘육적 영적 가난에 처한 너희’와 함께
말씀이 흥왕하여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가 넘치는 하나님 나라를
땅끝까지 굳건히 세울 수 있기를 아버지께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