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9일 수요일
창세기 22:1-14
“여호와 이레”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하나님이 약속이 이루어졌다. 모든 것을 가지고도 한 가지 부족했던 아브라함 가정에 이삭이 태어남으로 사라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그곳에 정착해 있던 이웃 아비멜렉과도 브엘세바 조약을 맺음으로 평화스러운 날들이 지속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때였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청천벽력과도 같은 명령이었다.
도저히 받아 드릴 수 없는 하나님의 요청에 아브라함은 한 마디 대꾸도 없었다. 그의 행동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곳으로 향했다.
골고다의 예수님의 모습이 이곳에 담겨있다. 두 명의 종이 동행하였다.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두 강도의 모습이 보인다. 삼 일 길을 걸어갔다. 3일 동안 무덤에 머무르셨던 시간이 생각난다.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갤 때, 아브라함의 마음도 찢어졌을 것이다. 장작을 메고 걸어가는 이삭의 모습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의 골짜기 골고다로 향했던 주님의 모습을 본다. 3일 길을 걸어가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다. 타들어갔던 아브라함의 마음에서 삼일 동안 죽음으로 단절된 성부 하나님의 마음을 본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순종을 통해서 예수님 십자가를 예고편으로 보여주고 계신 것이다.
신구 씨가 출연한 “너희가 게 맛을 알아!”라는 광고가 생각이 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 같다.
“너희가 내 마음을 알아!”
아브라함은 이삭을 결박하였다. 번제 단위에 아들을 올려놓고는 드디어 칼을 잡고 내리 치려는 그 때, 하늘로부터 다급한 음성이 들렸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두 번 씩이나 부르시며 아브라함의 손을 붙드셨다. 거기까지였다. 숫양이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의 번제 단에 달리셔야만 했다. ‘여호와 이레’는 준비된 숫양이 아니었다. 나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거신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사랑의 말이다.
오늘 아브라함의 삶의 길목에 ‘여호와 이레’의 이정표가 또 하나 생겼다.
오늘 내가 드려야 할 이삭은 무엇인가? 나는 주저함 없이 드릴 준비가 되어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