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8일 화요일
창세기 21:22-34
“브엘세바”
이방인 아비멜렉은 일전에 사라의 일로 인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아브라함의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의 결론을 22절에 이렇게 고백한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오늘 본문은 ‘그 때에’로 시작된다. 아마도 이삭의 태어남을 보면서 한층 더 깊이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이방인의 눈에도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스마엘을 내보내는 냉정한 아브라함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위기의식을 느꼈으리라 미루어 짐작해본다.
아브라함을 수 년 간 지켜본 이방인의 입에서 “너에게 일어난 이러한 놀라운 일들은 네가 섬기는 하나님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아비멜렉의 고백은 오늘날 불신자들에게 개독교라고 조롱당하는 한국교회와 대조적인 모습을 본다. 이방인의 눈에 일개 나그네였던 아브라함에게서 하나님의 모습이 보였다는 것이다.
오늘의 만남은 적어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사람들의 대화였다. 아비멜렉은 평화조약을 맺자고 요청한다. 그는 잠재적 위협을 인지한 것이다. 이방인이지만 내일을 보는 그의 탁월한 지도력을 본다. 그와 함께 오늘의 아브라함은 이전과는 매우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기 아내를 빼앗겨도 침묵하였던 아브라함이었다. 그러나 오늘 주도권을 아브라함이 갖고 아비멜렉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삭의 탄생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확고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그에게 신앙의 이정표가 또 하나 생겼다. 브엘세바 즉, 맹세의 우물이다. 이 땅에 처음으로 등장한 협정이 평화협정이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해야 할일이 이웃과의 평화임을 배운다. 영적인 권위는 나의 삶 속에서 나와야한다. 나의 도덕적인 삶보다 위에 있는 거룩함이다. 그것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사랑의 힘이다. 세상과는 구별된 삶이어야 한다. 세상이 알 수 없는 평화,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몸으로 전하며 브엘세바 되시는 주님을 전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추신 : 어제는 너무도 슬픈 날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발생한 테러에 소천하신 한 분이 제 동료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기도할 뿐, 차마 전화조차 드리질 못했습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