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목장에서의 다툼은 고난도 비슷하고, 서로 친하게 지내던 나이도 비슷한 집사님 두 분이 서로 위해주고 권면해주다 생긴 일이었습니다.
주일과 수요예배에서 은혜받은 말씀과 매일 큐티로 어떻게 삶에 적용해야 할지 나누는 곳,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값주고 산 곳이 목장이고 집단치료 장입니다.
적지 않은 집단 9명이 모여, 리더가 가르치는 식이 아닌, 자식이나 배우자, 직장의 상사나 동료가 잘못이 아니라, 내 죄를 보는 현장에서 다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자존감이 없었던 저는 이게 다 리더쉽이 없어서 그러지 하며 자책감에 힘들어했을텐데, 그동안 들어둔 말씀이 있어서 "그래도 목장에 와서 터트리고 싸우니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여기서 터트릴 수있으면 건강한 것이에요. 우리 함께 풀어가요." 라고 서로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큐티인에 제목이 '준비된 신부'인데
그리스도의 신부로 단장시키는 신부대기실인 목장에서 다투는 것도 준비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볼 때, 다툴 수는 있지만 안다투는 것이 더 좋고, 서로를 체휼하고,
먹을 것을 정성스럽게 싸와서 같이 먹고, 서로 편이 되어주고, 다른 고난을 자기 것인양 들어보고 하는 것들이 더 좋습니다. 물 달라는 나그네에게 자동차에 기름까지 넣어드릴까요. 하는 건데
그것도 모든 낙타라고 하니 좀 많은 차에 기름을 다 넣어주고, 돈이 없어서 어떻하지..근데 이건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좀 마음이 편해집니다.
주님 저도 오늘 아브라함의 종처럼 묻습니다. 어제의 다툼을 그리스도의 신부로 준비되기 위한 치열한 마음가짐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 분이 서로 억울하다고 할 때 충분히 그 한분의 말을 듣고 그 억울한 마음을 체휼해주고, 옳고 그름에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어릴 때 다투지 못한 것을
여기 든든한 울타리에서 서로 퇴행하여 싸우고 싶었던 것이라고 해석해주는 것이 그리스도의 신부로 단장시켜주는 준비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 맞아요? 라고 물으며 오늘은 웬지 'ok!' 하시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 다툼의 불편한 시간, 20분 정도의 시간을 같이 견뎌준 성숙한 아둘람 공동체가 있기 때문에 저도 힘낼 수 있었습니다. 대개 목자가 실수해서 일이 생기면 한결 낫습니다.
목자가 진정으로 사과하고 자기 죄를 본 것을 말하면, 그 분이 받아줄 경우 더 좋아지는 끈끈한 관계가 되기도 하는데, 식구끼리 다툼이 일어나면 좀 오래갈 때도 있습니다.
한 분이 마음을 안풀때, 그 분을 위해 기도하고 더 사랑하고 더 섬기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찾겠습니다. 멀리 길 떠나는 아브라함의 종처럼, 돌아올 때도 기도하겠습니다.
제가 워낙 생긴 것과는 다르게 싸우는 것을 무서워하고, 내 의견을 말해야 하는 경우엔 눈물이 먼저 나서 말도 못합니다. 어제는 그것을 목장 식구와 같이 견뎌내고 서로 조금씩 참아내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다라는 생각은 안합니다.
제 자녀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준비하겠습니다. 길 떠나기 전에 기도하고 구체적으로 신부같은 눈부신 흰 코트(세일 품목)도 사주고, 적금도 조금 더 부으며,
제일 먼저 저와 자녀의 믿음의 분량도 삶에서 체크해보겠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는 아들을 위해서는 애통으로 기도하고 오늘 당장 제가 죽으면 어떻게 할까
하는 급한 기도와 준비를 하되, 지혜롭게 때를 보고 여러가지 다른 말로 권면하겠습니다. '교회'에 대한 얘기는 당분간 하지 말라니 '교회' 단어만 빼고
권면할 수있는 방법을 찾겠습니다. 그것이 아들과의 다툼속에서도 견디는 방법이고, 제가 가정에서 싸우지 못해 무조건 들어줘서 생겼던 파탄을 막는 길임을 이제 압니다.
자녀에게는 부모가 싸우는 것이 무섭고 두려운 일인데, 싸우고 나서 어떻게 성숙한 방법으로 화해하는 가가 더 중요하다는 목사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어제 그 두 분에게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우리가 준비 중이라고, 제발 붙어만 있자고, 제가 게을러서 두 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쉽게 지나가려고 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