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5일 토요일
창세기 20:1-18
“또 팔았구나”
오늘 아브라함의 죄라면 예쁜 아내를 둔 죄였다. 90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그녀는 예뻐도 너무 예뻤다. 한 눈에 들어온 그녀의 외모는 압권이었다. 가는 곳마다 왕들에 의해서 간택된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셨다. 위기를 모면할 뿐만 아니라 부를 축적하는 묘한 기회로 삼으셨다.
아비멜렉은 그랄 왕이었다. 애굽왕 바로처럼 그도 그의 땅에 들어온 이방인에게서 물건 납품 받듯이 사라를 데려간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조카 롯이 포로로 끌려갈 때, 318명의 사병을 데리고 동맹군을 향하여 달려갔던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빼앗기고도 속수무책이라는 점이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꼬리를 무는 의문에도 똑 부러진 결론이 떠오르질 않는다. 그의 잘못은 사라를 누이라고 단초를 제공한데 따른 것이었다. 일전에 동일한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그는 또 반복된 실수를 하고 있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처럼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꿈을 통하여 그랄 왕에게 나타나셨다. 오히려 아브라함을 나무라셔야함에도 그를 선지자라며 두둔하고 계신다. 구속사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기다리셨다. 이제 이삭이 태어날 시간이 임박했는데 위기를 만난 것이다.
이방인이었던 아비멜렉은 하나님의 책망에 아침 일찍이 일어나 종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을 불렀다. 이방인의 입에 하나님께서 하실 말씀을 두셨다. 책망하면서 “네가 어찌 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며 따지자 아브라함은 뻔뻔하게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방인과 하나님의 사람의 말이 뒤바뀐 듯 보인다. 아비멜렉은 화해의 표시로 가축과 종과 은 1000개를 주어 사라를 돌려보낸다. 회개로 말하자면 제대로 돌이키는 장면이다. 그에 반해 아브라함은 하얀 거짓말로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25년 전에도 그러했듯이 하나님께서는 그랄 왕을 통해 많은 물질을 얻게 하셨다. 더 나아가 강권적으로 아브라함의 탈선을 막으셨다.
나이가 들었어도 반복되는 죄를 보면서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을 파고드는 사탄의 전략을 보게 된다.
어떻게 이런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개탄과 반문에 앞서 나에게도 똑같은 잘못이 늘 있음을 보게 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본다. 나이가 들어도 끊을 수 없는 죄의 유혹 앞에서 깨어 기도해야함을 배우는 아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