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2:7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창22:9~10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창22:12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개인적으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가장 인정이 되는 장면입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물론 내 믿음의 수준으로는 이런 시험을 주시지 않겠지만, 아브라함처럼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손에 든 칼로 아들 이삭을 내리치려는 아브라함을 묵상하니 눈물이 다 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인가 봅니다.
독자 이삭을 아끼지 않는 아브라함의 모습에 독자 예수님을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마음이 겹쳐집니다. 아브라함의 고뇌를 생각하자니, 나를 위해 예수님을 대신 죽게 하신 하나님의 마음도 그러셨을 거라고 짐작이 됩니다. 당신이 하시지 못할 일은 피조물에게도 시키시는 분이 아니심도 묵상이 됩니다.
번제할 어린 양을 찾으며 예배를 준비하려는 이삭의 모습이 참 귀합니다.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 밑에서 잘 자란 것 같습니다. 이삭을 묵상하다가 오늘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딸이 생각납니다. 일이 바쁘다고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아빠라서 참 할 말이 없습니다. 어제 오래간만에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는데, 어느새 많이 자란 딸의 모습을 보니 저절로 감사가 나옵니다. 나름 착하게 크고 있는 것 같은데, G랄 총량을 채울 날이 그리 멀지 않았음도 묵상이 됩니다. 나를 위해서라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본이 되는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