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2;1-24
아브라함에게 행하시는 시험이지만 나에게 보여주시기 위한 시험입니다. 이 시험이 나에게 참으로 크고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왜요가 없는 아브라함입니다. 고민도 갈등도 없이 말씀을 받으면 죽음보다 강한 순종을 합니다. 지금 아브라함의 믿음에는 거칠 것이 없습니다. 그 좋아하던 이스마엘을 내어 쫓는 적용은 오늘 이삭에 대한 적용에 비하면 오히려 쉬워보입니다. 아브라함도 자식을 넘어서기가 가장 힘들었는지 하나님께서 자식에 대한 적용을 주십니다.
나는 너무 창피한 자입니다. 만나지도 못하는 자식을 잊고 끊어 내는데 수년이 걸렸고 아직도 온전하다 할 수가 없습니다. 수년 동안 굴속에서 음란하며 우상처럼 간직했었는데, 이런 나에게 아브라함의 점점 강한 적용은 인륜은 천륜(말씀)앞에서 잠간의 고민거리도 안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내가 아무리 잡고 놓지 못하고 마음에서 사라질까봐 두려워 잊지 않으려고 곱씹어도, 하나님은 뜻하신 계획대로 행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욱이 예배하고 말씀보고 기도하는 자녀에게 더욱 분명하게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마음 아프고, 나무를 쪼개는 것도 마음 아프고, 삼일을 가는 길도 마음 아픕니다. 순종이 이렇게 아픈 것 같습니다. 삼일을 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삭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원망 했을까? 하나님이 보여주신 지난 일들을 생각했을까? 도망가고 싶었을까?
나는 작은 순종이라도 할땐 불안하며 걱정을 합니다. 이게 맞나? 나중에 후회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사람에게 물어 볼때도 있습니다.
상식과 인륜을 뛰어넘는 죽음의 순종이 오늘 이루어지는데, 역시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기에 기뻐하실 그 이름, 아브라함입니다.
가슴이 먹먹해서 읽어 내려가기가 어렵습니다. 바라본지라... 여기서 기다리라... 아이와 함께 가서... 우리가 돌아오리라... 아버지여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하나님이 준비하신다...
네 아들 네 독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어떻게 나의 믿음을 말할 수있겠습니까? 주님 앞에서 나는 아끼는 것이 너무 많은 자입니다.작은 것들은 부끄러워 쓰지도 못하겠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자식도 우상처럼 아끼며 걱정하는데... 이제는 정말로 끊으라시는 것같습니다. 내가 영 못 알아들으니까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것까지 보여주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열국의 아비 믿음의 조상은 못 될지언정, 내 삶이라도 구원과 거룩으로 채우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내가 어떻게 예상하며 갈수 있겠습니까? 작은 믿음으로라도 순종하면 늘 대신하여 주시고 준비해 주시는 은혜의 감격을 누리며 가고 싶습니다.
내가 주님 앞에 아끼지 아니한 것이 있으면, 말씀대로 준행한 것이 있으면...
참으로 말씀이 기가 막히게 오묘합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면 잠시 리브가를 보여주시듯이 나에게 소망의 기쁨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샬롬.
주님.
아브라함이 인간의 모든 감정을 삼키며
순종을 합니다.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불쌍히 여기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Jesus Name Amen
적용>나를 회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