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2:1
제게는 금쪽같은 두 딸이 있는데 지금이라도 마지막 시도를 한다면
분명히 아들을 낳을 수 있지만 저는 딸들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기꺼이 아내의 태를 막았습니다. 헐,ㅠ
그리고 딸기 아빠로서 보부도 당당히 바지 바람을 일으킬 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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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이 잘난 딸 때문이라는 것을
동네 사람들과 담임선생님까지는 다 압니다.
저는 십년 째 미술을 공부하고 있는 울 공주를 예고에 보내려고 합니다.
어제는 분당에 있는 k 예고 미술 실기대회에 갔다가 뙤약볕에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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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있는 학생들 속에서 반짝 반작 빛나는 울 공주를 보았습니다.
거짓말이 아니라 어디에 내 놓아도 언제나 어디서나 돋보입니다.
저녁에 일찍 일찍만 들어온다면 난 우리 공주에게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막내 예주(7세)는 괄호를 닫았다가 낳은 딸로 처음엔 언니에 가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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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었는데 해가 거듭할수록 미모와 지성을 갖춰가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피아노는 이제 체르니(Czerny)를 치고
기탄수학도 했다하면 앉은 자리에서 한권을 다 끝내는 실력파인데다가
저녁까지 나가서 해결하고 들어온다니 이런 효녀가 또 어디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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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비웃음을 웃음(이삭)으로 바꾸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오셨는데 이번엔 자식을 번제로 바치라는 겁니다.
휴~ 제게 직접화법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니
천만다행 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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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시련”과 “선악을 분변할 수 있는 지를 테스트하기 위해서“
라고 하니 남의 말처럼 들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까지는 약 70km정도인데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하여 3일 만에 모리아 산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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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말할 것도 없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끼는 자식이었고 또 이삭이 죽게 되면 하나님의 약속이 무산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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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기에 이미 죽은 몸에서 이삭을 생산케 하였다면 죽은 이삭인들
살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대단합니다,
역시 믿음의 조상답습니다. 그러고 보면 믿음은 출애굽, 유월절, 홍해,
광야생활을 겪으면서 포괄적이고 역동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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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트고 점차 자라서 구원에 이르는 온전한 수준까지 도달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왜, 아들까지 죽여야 하는지 그 뜻은 도대체가 모르겠습니다.
누구 아는 사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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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을 보내심으로 아들을 대신할 번제물을 준비하신 하나님 찬양을 받으소서.
자기희생이 없는 사랑은 가치가 없다는 것을 또 배웁니다.
믿음의 실천 장에 관객이 없을 때에도 ‘여호와이레’를 믿고
내 목숨과도 같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2006.6.5/헤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