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1;22-34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삶에서 하나님을 보았나 봅니다. 하나님께서 현몽하여 말씀도 하셨고 그의 삶을 보고도 인정합니다. 말씀과 삶이 같은 아브라함입니다. 일개 족장이 한 나라의 왕과 대등한 관계를 넘어 우월한 위치에서 상대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16년간 인간의 절절한 아비의 정을 끊어내고 이스마엘을 내어 쫓는 적용을 한 그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적용의 힘이 정말 무섭고 대단합니다. 그리고 우물을 빼앗기며 오래 참았던 문제도 해결합니다. 한 나라의 왕을 책망하며 막혔던 것을 풀게 됩니다. 말씀을 적용했던 그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나는 어제의 말씀에 적용을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나의 인간적인 마음 때문에 무엇이 옳은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처럼 믿음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내 생각에 이 우물은 아브라함이 값을 치르지 않고 가져와도 될 것같은데 아브라함은 우물 판(dug) 증거로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습니다??
아브라함은 적용의 결단을 잘합니다. 나처럼 대충 넘어가거나 우유부단하지 않습니다. Yes와 No가 분명하고 아닌 것과 맞는 것이 확실한 사람 같습니다. 점점 따라가기가 어렵고, 이스마엘을 좋아하고 사라를 팔 때의 아브라함이 보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내가 이렇게 믿음의 진보가 안되는 자입니다. 내가 편한대로 정욕대로 욕심대로 악한대로 살려고 하는 자입니다. 입술로만 나눔으로만 가끔 생각으로만 변한척하는 자입니다.
오늘 아브라함을 보면서 재물이 목적이 아니고 재물은 분명한 목적을 위해서 의미있게 사용되어져야함을 알게 됩니다. 나의 영적 지경을 세우기 위해, 후손의 목마름을 위해, 세상과의 갈등을 종결하기위해 사용합니다. 내가 재물을 따로 떼어 놓음으로, 나의 지경을 지키고 세상과의 갈등을 끊어버려야 할 일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0000, xxxx....)
어제도 오늘도 아브라함은 내가 하기 어려운 적용만 합니다.
아브라함의 주도적이고 담대한 결단으로 아비멜렉은 돌아가고 그들과의 관계도 정리가 됩니다. 세상과는 꼭 전쟁이 아니라도 믿음과 삶의 적용으로 이렇게 깔끔하고 멋있게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거기서 에셀나무를 심고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경배하며 안식합니다.
적용 후 안식입니다. 하나님만 신뢰하는 믿음이 오늘의 아브라함이 되게 했습니다.
그 믿음으로 내일의 내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나를 용서하옵소서
끊어내지도 못하고 갈등을 피하려고만 합니다.
사라를 팔았던 아브라함이 이렇게 변했습니다.
믿음을 주옵시고 나를 인도하옵소서. Jesus Name Amen
적용>앞으로 보낼 양육비 총액을 따로 떼어놓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