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4-25
“종류대로”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실 때 복제품을 만드시지 않으셨다. 모든 동식물을 종류대로 만드셨다. 말씀 한 마디로 온 우주를 만드셨다. 하나님께서 종류별로 만드신 자연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손길과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일 것이다. 창조의 원리 중 하나인 다양성을 인정한다면 인종을 초월하고 계층을 무너뜨릴 수 있다. 하나님의 다양한 창조의 질서를 이해할 때,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다양성은 만물을 풍성하게 한다. 짧은 구절 속에서 5번이나 종류대로 만드셨음을 강조 하고 있으시다. 이것은 공허한 반복이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귀한 것임을 가르치고 계신다.
실로암 연못가에서 예수님에게 제자들이 물었다.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요 9:3) 제자들은 장애를 가진 것은 죄로 인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의 모든 편견의 벽을 무너뜨리신 이 한 마디가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말씀이 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창조물을 보시면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일하심을 본다.
윤동주는 서시(序詩)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잎새에 이는 바람을 보면서 괴로워했다. 그가 하나님이 만드신 창공을 바라보았다.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기도하였다. 윤동주는 모든 죽어가는 것조차도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바람 한 자락에도 사랑을 배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