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18)
‘아브라함이 말도 안되는 황당한 실수를 했어도, 하나님이 아브람함 편만 들어주신 것처럼, 하나님 제 편만 들어주세요~~’
순간 기도하다가 저와 아내는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습니다. 어제밤 오늘 큐티를 가족끼리 하면서 마지막 기도 순서에 딸이 한 기도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순수한 기도가 딸의 마음이자, 솔직히 저의 마음과도 같습니다. 수없이 많은 같은 실수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제 편만 들어주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해 주시길 소리내어 간구하고 싶지만, 차마 양심이 있어서 그러지 못할 뿐이지, 맘은 똑 같습니다.... 딸이 오히려 담대합니다.
오늘 말씀으로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묵상해 봅니다. 아내가 사라가 누이라 한 것(12,13)이 결코 거짓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실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급한 것’과 ‘중요한 것’의 차이, ‘세속사’와 ‘구속사’의 차이를 보는 것 같습니다. 언듯 보면 별차이가 아닌 듯한데, 많은 사람이 죽을 뻔 했습니다. ‘사실’위에 ‘말씀’이 덧입혀질 때, ‘진실’이 되는 것 같습니다.
‘속이는 자보다 속는 자가 더 나쁘다’라는 말을 우리들공동체에 와서 충격으로 듣고 인생이 재해석된 기억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동료에게 속았다는 억울함과 분노가 있었는데, 이 말씀 한마디로 내안의 숨은 욕심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비멜렉이 ‘안목의 정욕’에 눈이 어두웠으니 갖다 바치는 이쁜 여자를 덮썩 가지려 했을 것입니다. 그 욕심이 없었으면, 소문도 없었을 것이고, 아브라함도 그런 거짓을 만들지 않았을 겁니다. 속는 자가 더 어리석으니, 결국 하나님의 벌을 받을 뻔 했습니다.
하나님이 제 편인 것이 너무나 좋습니다. 그래도 반복하는 말의 실수, 또 반복되는 혈기를 줄이기를 소원합니다. 사실을 강조하면서 나의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의도를 버리고자 원합니다. 욕심 때문에, 인정 받고자 해서, 세상적 혼탁과 유혹에 속아 넘어가지 않기를 다짐해 봅니다.
적용> 요즘 새학기가 준비되면서 많은 프로젝트의 요청이 있는데, 세상욕심, 사람인정으로 분별없이 수락하지 않겠습니다.